기후위기 생존 대책? 이미 다 있다
[2020년 기후는 정치다] ②
기후위기 생존 대책? 이미 다 있다
지구 가열을 멈추게 하는 생존 대책

지구 온난화를 넘어 지구 가열화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이상 기후를 낳고 있다. 이런 미지의 새로운 기후 이변을 산업화 이전 시기로 되돌린다는 의미에서의 기후위기 해결책이란 없다.

우리는 다만 기후위기에 적응하는 생존 대책을 모색하는 수밖에 없다.

지구 가열화를 여기서 멈추게 하고 지금의 기후를 더 이상 악화시키지 않는 상태에서 사람들이 생존해 나갈 수 있는 대책은 이미 다 나와 있다.

핵심은 숲, 토지, 바다 등 자연의 회복력, 재생능력(resilience)에 백프로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초등학생도 아는 너무도 간단한 답이다.

이산화탄소와 메탄가스를 비롯한 온실가스 배출을 제로로 하면 된다. 아울러 지금까지 배출된 온실가스를 숲과 땅으로 도로 되돌려 흡수시키면 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는 1996년부터 온실가스 배출을 크게 에너지, 산업공정, 농업, 토지이용, 폐기물 등 5개 분야로 나누어 통계표를 작성해 왔다. 

물론 에너지 분야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80% 이상으로 가장 많다.

당연히 수송, 상업, 산업, 공공, 가정 등 에너지 소비 분야별 온실가스 배출을 제로로 하면 지구 가열화는 멈춘다.

그리고 부품을 생산하고 발전 시설 지을 때를 빼고는 거의 온실가스 배출이 없는 햇빛발전, 바람발전, 수력발전 등 재생에너지 발전으로 전기에너지 수요를 100% 충당하면 된다.

모든 교통수단을 전기차와 자전거, 건강에도 좋은 두 다리로 바꾸면 된다.

모든 건축물을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고 햇빛발전, 바람발전, 지열 이용 등 건물 자체에서 생산되는 에너지로 소비를 충족시키는 넷제로 건축물로 전환하면 된다.

무엇보다도 온실가스를 다량으로 배출하는 관행농 석유 농축산업을 온실가스를 흡수하는 재생농업, 전통 기후농업으로 다시 바꾸면 된다.

온실가스 투성이의 공장 고기, 석유 고기는 이제 그만!

특히 오늘날 공장식 축산은 이산화탄소보다 30배 이상 더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메탄가스 배출의 주범으로서 채식으로의 전환은 필수이다.

채식주의 논쟁을 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모든 축산을 폐기하고 육식을 금지하자는 얘기도 아니다. 기후위기 시대에 적어도 공장식 축산만큼은 바꾸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다.

사실 오늘날 공장식 축산에서 생산된 '공장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석유 고기'를 먹는 것과 똑같다. 비좁은 케이지 고기 공장에서 스트레스와 화로 가득 찬 사육동물의 단백질을 섭취한 사람들이 스트레스와 화로 가득찬 질병을 얻게 되는 현실은 너무도 당연하다.

기후위기 생존 대책은 실현 불가능한 게 전혀 아니다. 주권자들이 이산화탄소 화석연료 기업들의 포로가 되어 있는 국가를 해방시켜 주권자의 국가 통치권을 탈환하기만 하면 된다. 지금 당장이라도 추진할 수 있는 온실가스 배출 제로의 세부 정책과 제도는 이미 다 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해결책에 대해 개발과 성장의 산업사회 문법으로, 이른바 숫자과학, 숫자경제로 설득력 있게 풀어쓴 책 가운데 하나가 <플랜 드로다운>(폴 호컨, 글항아리, 2019)이다.

문제는 1992년 리우 기후정상회의 이후 30년 가까이 국가와 기업은 이같은 생존대책의 수립과 실행을 계속 뒤로 뒤로 미루어 오기만 했다는 점이다.

끔찍한 식량위기, 식량전쟁이 곧 닥친다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인 2004년 미 국방부의 비밀보고서가 공개되어 전세계에 충격을 던져 주었다. 지구 차원의 기후변화와 자연재해, 이로 인한 인간의 처절한 생존 투쟁 가능성 등을 광범하게 예측하면서 미국 국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앞으로 세계는 종교, 이데올로기, 민족 갈등으로 인한 다툼보다 기후변화로 인한 전쟁과 기아에 시달릴 것이다. 대규모 기후 난민들이 몰려드는 미국과 유럽의 부자 나라들은 사실상 국경을 봉쇄하는 쇄국정책을 펼 것이다. 특히 유럽은 해안과 국경선으로 몰려드는 불법 입국자들을 처리하느라 심각한 내홍을 겪게 될 것이다 등등.(한겨레, 2004. 2. 23.)

미 국방부 비밀보고서의 예측은 곧 현실이 되었다.

2006/2007년의 이상기후로 인한 세계 곡물생산량 감소는 곧바로 전세계 식량전쟁과 폭동으로 이어졌다. 2007년 10월, 밀, 옥수수, 콩 등 주요 곡물 가격은 1년 전에 비해 35~68%까지 급등했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도 밀가루와 라면, 자장면, 과자 등 서민 식품과 사료, 비료 등의 가격이 거의 두 배 가까이 폭등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지금 유럽은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밀려드는 기후 난민으로 인해 난민 추방과 혐오를 부추기는 극우파가 득세하면서 보고서 그대로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 기후위기는 곧 식량위기이며 기후 전쟁이다. 국가간 전쟁뿐만이 아니라 한 국가 내에서도 부자와 빈자의 전쟁을 예고한다.

기후위기 식량위기를 실감한다면 도시 주민들에게는 지금 당장이라도 도시텃밭을 권하고 싶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런던이 독일군의 공격과 공습으로 식량공급 체계가 무너졌을 때, 시민들을 먹여 살린 것은 시민들 스스로 집 앞과 도시 곳곳에 조성한 도시텃밭(gardening)과 승리를 위한 경작(Dig for Victory)이었다.

구소련 멸망 뒤 러시아 도시 주민들이 굶어죽지 않은 것도 다차라는 도시 근교 텃밭 덕분이었다.

구소련이 무너진 직후 구소련으로부터 거의 공짜로 공급받고 있던 석유 공급이 끊기고 모든 산업이 기능 정지 상태에 빠진 국가 비상시기에 쿠바 인민들을 아사에서 구한 것도 그 유명한 도시농업이었다.

당시 똑같은 상황에서 지금껏 그 수를 알 수 없는 아사자가 발생한 북한과 비교가 된다.

2010년 IMF 사태 당시 아무런 일자리도 없는 그리스 청년들이 먹고 살기 위해 선택한 길도 귀농이었다. 지금 그리스는 전세계에서 유기농 청년 농부들이 가장 많이 증가한 나라이다.

그린 뉴딜, 선거 공약에 앞서 주권자 연대가 우선이다

온실가스를 혁명 수준으로 줄이면서도 IMF 사태같은 충격 없이 체제 전환을 시도하는 유력한 방안으로 제기되고 있는 게 그린 뉴딜 정책이다. 대규모 공공사업을 통해 대공황에서 탈출했던 뉴딜 정책의 기후공황판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린 뉴딜의 내용은 공약으로 내건 정당이나 후보별로 또 나라별로 편차가 있긴 하다. 그러나 대체로 화석에너지 산업 체제에서 재생에너지 산업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정의로운 전환 일자리도 오히려 늘리고 불평등도 해소한다는 국가 주도 대규모 공공사업 경제사회 전환 정책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린 뉴딜은 2008년 영국 그린뉴딜 그룹의 제안, 2009년 유엔환경계획의 세계 그린뉴딜 정책보고서 발간 등으로 이미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2019년 미국 민주당이 하원에서 결의안을 제출하고 민주당 대선후보들이 다투어 그린뉴딜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면서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부각된 정책이다.(이유진, '그린뉴딜 시사점과 한국사회 적용', 국토연구원 워킹페이퍼, 2019. 12. 31.)

한국에서도 이미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을 녹색 뉴딜 정책이라고 선전하면서 그 '오명'을 전국민에게 깊숙이 각인한 바 있다.

이명박의 사이비 녹색뉴딜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2019년 7월 대통령 직속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이 '전환적 뉴딜 세미나'를 열었다.

전환적 뉴딜이란 우리 사회의 근본 전환을 위해 휴먼 뉴딜, 디지털 뉴딜, 녹색 뉴딜 전략을 '근본적인 제도 개혁과 전략적 재정투자 정책'을 통해 실행해야 한다는 제안이었다.(유종일, '전환적 뉴딜 정책 제안',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전환적 뉴딜 T/F, 2019. 6. 19)

그리고 녹색당과 정의당, 민주당의 김성환의원 등이 그린뉴딜 전략 토론회 등을 통해 선거 공약으로 내걸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린 뉴딜은 오늘날 극심한 불평등과 기후위기 사태에 직면한 자본주의 근대 산업국가의 새로운 돌파구로서 충분히 주목할 만한 정책이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지만 기후위기를 초래한 주범은 자본주의건 사회주의건 다름아닌 근대 산업국가와 기업이다.

산업국가와 기업의 그 체질 자체와 성장 패러다임을 근본에서부터 바꾸지 않으면 기후위기 해결책이 아니라 거꾸로 기후위기 촉진책이 되리라는 것은 지난 30년의 유엔 기후회의가 웅변으로 보여주었다.

도대체 얼마인지 모른 천문학의 국가 예산을 강도질한 이명박의 녹색뉴딜이 생생한 증거이다.

국가관료 체제의 근본 전환과 국가 정책 실행의 실태에 대한 근본 성찰 없는 그린 뉴딜은 위험하다.

선거 공약으로 내걸어 선거권자의 동의를 얻기만 하고 추진하는 그린 뉴딜은 히틀러의 예에서 보듯 결국 기후 파시즘으로의 질주가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린 뉴딜을 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선거권자의 동의를 얻는 하향식 방식은 기후위기 적응과 극복의 시간 끌기 미봉책이자 다른 방향으로의 국가주의 확대로 나아갈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주권자 스스로의 자각과 선택, 공동체 연대를 가능케 하는 풀뿌리 하방연대의 그린 뉴딜이 먼저라는 얘기다.

밀양 송전탑 진상조사위원회조차 구성하지 못하는 기존 관피아 체제에서 무슨 그린 뉴딜이 가당키나 한 말인지 되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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