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행복보고서 1위 핀란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복지국가SOCIETY] 핀란드에서 배우는 사회 실험과 혁신
세계행복보고서 1위 핀란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코펜하겐에서 이틀을 머물면서 몇 군데 사회 실험과 혁신의 현장을 둘러보고 핀란드의 헬싱키로 떠났다. 이번 방문 국가들 중에서 가장 긴 4일 동안 체류할 예정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유엔이 매년 발표하는 세계행복보고서(WHR; World Happiness Report)에서 덴마크가 선두를 차지했는데, 지난해와 올해는 핀란드가 1위를 차지해 덴마크 국민의 자존심이 좀 상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몇 년 동안 핀란드에는 무슨 일이 있었기에 국민의 행복감이 커졌을까, 궁금증이 커졌다.

핀란드에서 이틀간 정부기관을 공식 방문하고, 기관들이 쉬는 주말에는 좀 더 편하게 핀란드 사람의 일상적인 문화와 생각을 접할 수 있는 도시재생지역, 도서관, 미술관 등을 방문하는 시간을 가졌다. 민관 협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혁신 정책의 생산을 미션으로 삼은 핀란드 고용경제부, 다양한 주체와 협업을 바탕으로 취업률 95%를 자랑하는 라우라 응용과학대학, '실험하는 핀란드' 정책으로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핀란드 총리실이 공식 방문기관이다.

시민이 제안하면, 정부는 지원한다

핀란드는 유권자의 1.2%에 해당하는 5만 명이 발의하면 국회에서 이를 자동적으로 논의하고 결정하는 직접민주주의 시민발안제도를 2012년 개정 헌법에서 명문화했다. 직접민주주의는 스위스가 가장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지만, 핀란드 역시 직접민주주의 원리인 시민발안제도를 헌법에 명문화해 시민의 뜻과 의지를 존중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핀란드의 사회 실험과 혁신 정책의 전체적인 윤곽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총리실에서 진행한 '실험하는 핀란드(Experimental Finland)' 발표와 간담회 자리였다. 핀란드 총리실의 수석전문가 이라 알란코(Ira Alanko)는 실험하는 핀란드 정책에 왜 나섰는지, 또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발표를 진행했다.

"핀란드는 최고 수준의 복지국가와 역동적 시장경제, 혁신적 교육으로 세계의 부러움을 사는 나라 중의 하나다. 하지만 더욱 복잡해지는 외부 환경과 빠른 변화, 더욱 확실한 증거에 기반을 둔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보다 혁신적인 실험 문화와 정책이 필요했다."

▲ 실험하는 핀란드 홈페이지. ⓒhttps://kokeilevasuomi.fi/en/frontpage


'실험하는 핀란드'를 국가의 중요 정책으로 내건 것은 2015년 구성된 우파 연합정부인 유하 시삘라(Juha Sipila) 내각이었다. 이 우파 정부에서 처음으로 팀을 구성하고 관련 정책으로 구체화했다. 올해엔 사회민주당이 제1당이 돼서 좌파 연합정부를 구성했다. 그런데 좌파 연합인 안띠 리네(Antti Rinne) 내각에서도 이 정책은 계속되고 있다. 집권 정당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중요 정책이 지속되는 것은 다당제 합의제 민주주의의 큰 장점이다. 좌우를 오가며 정책의 일관성이 떨어지는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에 비추어보면 부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지난 5년 동안 핀란드 정부는 시민과 사회단체 등의 제안을 받아 250여 건의 크고 작은 사회 실험을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했다.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무엇인가?

'실험하는 핀란드'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계기는 2017~18년에 진행된 기본소득 실험이다. 세계적으로 기본소득이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2016년 스위스에서는 관련 안건이 국민발의를 통해 국민투표에 붙여져 관심을 끌기도 했지만, 기본소득이 국민의 삶에 미칠 영향을 실질적으로 실험한 것은 핀란드가 처음이다.

사회보험국(Kela)에서 진행한 핀란드 형의 기본소득 실험은 임의로 선정한 25~58세 시민 2000명에게 매월 560유로(약 72만 원)를 지급해 기본소득이 지니는 효과성을 검증하는 정책 실험이었다. 지급된 기본소득은 사용에 아무런 제한이나 보고 필요가 없으며, 취업을 하더라도 수급이 중단되거나 차감되지 않았다. 기본소득과 취업률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이번 실험에서 정부의 기대대로라면 기본소득 수급자는 받지 않은 대조군보다 취업률이 높아야 했다. 하지만 2017년만을 대상으로 한 예비 결과 보고서에는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아직 2년의 실험에 대한 최종보고서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실험결과를 단언하기는 어렵다. 최종보고서는 내년에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기본소득제가 실패한 것 아니냐는 외부의 평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묻자, 브리핑을 한 담당자가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무엇인가? 우리는 실험을 통해 하나라도 배우는 게 있다면 이 정책은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정책실험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

우파 연합정부에서 시행한 기본소득 실험을 두고 다양한 평가가 있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에 대응해 정책 실험을 활성화하고 정책의 근거를 보다 확실하게 하려는 노력은 정당을 막론하고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듯 보인다. 핀란드 정부의 '실험하는 핀란드' 정책 때문인지 방문하는 곳들의 실험과 혁신 정책들이 두드러져 보인다. 

주민과 함께 스마트시티를 만드는 칼라사타마

이어 방문한 고용경제부에서는 기후변화 대응 거리, 자율주행버스, 실시간 개방형 교통신호 등의 실험적 프로젝트가 시민과의 교감 속에 진행되는 모습을 확인했다. 고용경제부는 주요 도시를 연결해서 더 큰 혁신이 어떻게 이뤄질지에 주목하며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정부가 주민과 교감하며 데이터를 만들고, 문제를 발견하고, 해법을 찾아나가려는 자세가 눈에 띤다. 

이를테면 자율주행 실험이 있다. 자율주행 시스템은 도시와 사람의 이동과 안전, 개인정보 등에 큰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다. 세계의 자동차 대기업들이 데이터와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비밀리에 이를 실험하고 있다면, 핀란드 정부는 스마트시티로 만들고 있는 칼라사타마에서 주민과 함께 데이터를 만들고, 발생하는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

칼라사타마의 시민 참여를 위한 다양한 제도 중의 하나는 '혁신가 클럽(Innovators’ club)'이다. 주민, 공무원, 학자, 시민단체 활동가 등으로 구성된 혁신가 클럽은 도입하려는 기술을 논의하고, 실험하고, 평가하는 절차를 거친 후 사업을 진행한다. 과학기술 발달이 재앙이 될지 축복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시민의 민주적 통제 능력이 재앙과 축복을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유럽 현장 탐방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 중의 하나는 로레아 대학과 헬싱키 중앙도서관 '오디'였다. 로레아 응용과학대학은 재학생 7800명 규모로 우리나라로 치면 전문대학 같은 곳이지만, 졸업생의 95%가 1년 안에 취업한다. 가장 취업률이 높고 인기가 좋은 대학이다. 핀란드의 대학교 학비가 무상인 것도 부럽지만, 대학이 지역사회의 참여 속에 혁신적 리빙 랩의 역할을 한다는 점은 더욱 부러웠다. 지역사회와 담을 쌓고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우리나라의 대학들과 대조가 됐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재학 기간 공공기관, 기업, 단체들과 평균 40개의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하면서 자신의 적성을 확인하고 능력을 계발하며, 참여 기관들은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학생을 우선적으로 채용한다. 그러니 취업률이 높게 나오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대학의 실험성과 역동성은 대학 총장이 직접 나와 이십 명의 방문단에게 진지하게 설명하는 모습에서도 엿보였다.

대학에서 리빙 랩을 진행하는 한 교실을 소개했다. 다소 인상이 험한 사람들이 교실에 있었는데, 다름 아닌 약물중독과 범죄로 10~20년의 수감 경력이 있는 이들이었다. 대학은 이들과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약물중독의 원인 연구, 법과 제도의 개선, 중독 위험 청소년 교육 등을 진행하고 있었다. 수감 경력자들은 이 리빙 랩 과정을 통해 전문성을 획득하고 재취업까지 했으니, 사회적으로 보면 일거양득, 아니 일거사득 정도의 효과는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모든 것을 배움의 과정으로 생각하는 사유의 대전환이 없이는 생각하기 쉽지 않은 실험이다.

▲ 약물 중독자들이 리빙 랩을 설명하고 있는 장면. ⓒ윤호창 제공


헬싱키 시민의 거실이 된 오디 도서관

헬싱키 시민의 거실로 불리는 오디 도서관도 마찬가지다. 이 도서관은 2018년 핀란드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독립을 위해 싸운 시민에게 헌정한다는 의미로 만들어졌다. 오디라는 단어에는 '헌정'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근래에 국내의 도서관도 많이 변화했다고 하지만, 오디 도서관은 국제도서관연맹에서 주는 ‘2019년 올해의 공공도서관’ 선정될 만큼 혁신적인 디자인과 개념을 담고 있었다.

'헬싱키 시민의 거실'을 핵심 키워드로 해서 만들어졌다는 오디 도서관은 기존의 책 읽는 도서관 개념을 파괴하고 있다. 1층은 시민이 다양한 정보를 제공받고 만남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고, 2층은 시민이 삼삼오오 회의와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재봉틀을 두고 옷 만드는 것을 배우고, 3D를 출력하고 음식을 배우며, 아이들을 위해서는 도서관에 컴퓨터 게임방을 들였다. 넓은 면적에 비해 장서는 10만 권 밖에 되지 않지만, 장서가 있는 3층은 가족들이 함께 놀고 쉬고, 도시의 전망을 만끽할 수 있도록 창가에 휴게 의자를 비치해 두었다. 도서관 내부에 사우나 설치 여부 두고 논란을 벌였을 만큼 헬싱키 시민의 편안한 거실 개념에 충실한 것으로 보인다. 많은 방문객이 이야기를 하고, 사진을 찍지만 책 읽는 사람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 눈치다. 도서관은 조용하게 책만 읽어야 한다는 이미지와 상식이 무너진다.

▲ 아빠들이 아이들과 함께 놀고 있는 오디도서관. ⓒ윤호창 제공


우리 사회의 소통과 혁신, 무엇이 필요할까?

우리 사회도 소통과 혁신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지만, 생각만큼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고 있지는 못하다. 행복국가 핀란드를 둘러보니 약간이마나 변화가 더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국가든, 지역사회든 축적된 신뢰자본이 부족하고, 힘을 가진 곳들은 권한과 책임을 나눌 자세가 되어 있지 않고, 민이나 관이나 소통과 협력의 방식에 익숙하지 않다. 이외에도 원인은 차고 넘치는 것 같다. 신뢰지수가 높은 핀란드도 오디 도서관을 만드는 데 20년의 시간을 두고 시민의 뜻을 물어가며 건축했다고 한다. 장기적인 비전과 시선이 중요하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고 한다. 그만큼 미래는 예측하기 힘들고, 기존의 방식으로는 새롭게 등장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힘들기 때문에 북유럽 국가들은 시민들과 함께 리빙 랩, 폴리시 랩 등과 같은 혁신적인 방법을 통해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려고 하는 점이 돋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불신과 갈등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우리 사회에 이를 그대로 적용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전근대, 근대, 탈근대'의 비동시적인 것들이 동시적으로 존재한 압축 성장을 겪은 우리 사회가 넘어서야 할 과제는 많다. 공자의 지적처럼 사회적 신뢰가 형성되지 않으면 제대로 된 해결을 기대하기 힘들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지만,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어낸 역동성을 가진 곳이기에 우리나라도 신뢰의 구축과 함께 새로운 사회 실험과 혁신을 통해 역동적 복지국가의 새 세상을 일굴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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