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국보법 폐지를 말하는 이유
[기고] 국보법, 한국 사회 황폐화하는 주범
지금, 국보법 폐지를 말하는 이유
국가보안법은 지난 1948년 12월 1일 일제의 치안 유지법을 모태로 좌익 활동과 반정부활동을 탄압하기 위해 제정됐다. 탄생부터 개인의 사상과 이념을 제한한 반민주적인 악법이었다. 이 법은 국내외에서 악법으로 지탄받아왔으나 70년이 넘도록 아직 살아있다. 비핵화, 남북교류협력 등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이 법은 한미동맹과 함께 두 개의 거대한 걸림돌로 버티고 있다. 

세계인권선언에 반하는 국보법이 한국을 지배해 온 지난 70년 동안 양심과 언론 자유, 민주주의는 처참하게 유린돼왔다. 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 1961년~2008년 2월까지 1만4000여 명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매년 298건이 기소된 것으로, 거의 매일 한 건 꼴로 국보법 위반 사건이 발생한 셈이다. 이런 비극적인 사실이 국제 사회에 알려지면서 남한의 위상은 추악하게 일그러졌다.

이승만 독재 정권에 이어 등장한 박정희 군사 쿠데타 정권과 그의 피살에 이은 전두환 정권까지 수십 년 동안 안보를 앞세워 국보법을 휘두르는 철권통치가 자행되면서 이 땅의 민중은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군인 정치인들은 공포정치를 자행하기 위해 국보법을 이용해 인권을 탄압하고 정치적 자유를 유린했다. 제도언론은 정권이 양산하는 갖가지 국보법 사건의 정부 발표문을 받아쓰는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했었다.

국보법은 헌법 1조 2항, 즉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에 위배된다. 국보법 제2조, 제3조, 제4조, 제6조, 제7조, 제10조가 특히 그렇다. 국보법 2조는 반국가단체 정의, 3조는 반국가단체 구성, 4조는 목적수행, 6조는 잠입·탈출, 10조는 불고지이며, 7조는 찬양·고무에 대한 것으로 대표적인 독소조항이다. 이 법은 국민이 북한을 접하고 생각하면 즉각 비이성적인 존재로 전락가능하다는 심각한 국민 모욕적 내용을 담았으므로, 시급해 폐지되어야 한다. 현재 국보법상 북한에 대해 그나마 자유로운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이 유일하다. 국보법에 따르면 어느 누구도 남북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해서는 안 된다. 어떤 대안을 모색하는 청사진을 제시해도 불법이다. 국보법이 존재하는 한 한국은 그것을 당연시 하는 기이한 나라다. 

국보법은 이 사회 사상과 상상의 자유를 70년 동안 억압하면서 사회적 상상력을 차단, 변질시키는 폐해를 낳고 있다. 북한을 궤멸해야 한다는 취지의 이 법은 남한 사회에서 경쟁 상대를 공존의 대상이 아닌 반드시 물리쳐야 하는 존재, 즉 선과 악의 개념 속에서의 존재로 축소하는 논리를 광범위하게 유포시키고 있다. 

국보법은 북한에 대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생각하지도 말라는 악법이다. 공자는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 즉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너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고 가르쳤는데 우리는 어떤가. 만약 북한에 대해 긍정적 또는 수긍하는 태도를 갖거나 행동한다면 고무찬양 또는 동조죄를 저지른 범법자가 된다. 국보법은 개인의 사상과 이념을 제한하고, 민주주의와 언론자유를 탄압한 악법이다. 이 법은 결국 간첩의 개념을 확대하고 허위 또는 왜곡된 사실의 유포를 막는다는 미명아래 실질적으로 언론 자유를 억압한다. 

국보법은 초등교육~고등교육 교과서 전반을 검열하고 일상적인 언론보도를 통제한 최대, 최악의 보도지침이다. 청소년이 통일을 먼 나라 이야기처럼 하는 현실은 국보법이 허용하는 공간에서 성장한 청소년들에게 당연한 논리적 결론이다. 

국보법은 그간 친일 세력이 일제 청산을 저지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국보법은 친일 세력이 해방정국에서 제기된 친일 청산 요구를 '빨갱이의 주장'으로 몰 수 있었던 보신책이었다. 수구세력이 국부로 모시려는 이승만이 앞장서 만든 국보법은 수구 보수 세력이 반세기 가까이 집권할 수 있었던 최대의 정치적 기반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당시 위원장 김창국)는 지난 2004년 8월 국회의장과 법무부장관에게 "국보법은 제정과정부터 태생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국보법은 법률의 규범력이 부족한 법으로 그 존재 근거가 빈약한 반인권법"이라며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국보법은 유엔이나 미국의 대북 제재보다 훨씬 강력하고 물샐틈없는 대북 제재 구조다. 이런 인식이 국내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강대국들은 국보법의 그늘 속에서 한반도의 현실과 미래에 부당하게 개입하려는 속셈을 펴고 있다. 한민족이 둘로 나뉘어 다투면서 외세가 그것을 악용하는 짓을 벌이고 있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예를 들면 미국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는 결국 북한과 중국을 이롭게 한다는 논리를 내놓아 한국 내 반대 세력들을 겁박했다. 

국보법은 이 사회에 진보의 황무지 상태를 초래한 가장 큰 원인이다. 진보는 상상의 자유 속에서 그 세력을 확장할 수 있는데, 이 사회에서 민족의 절반이면서 통일의 동반자인 북한은 적대적인 대상이거나 수혜의 대상이라는 시각만이 허용된다. 북한을 수평적인 관계에서 장단점을 평가하는 대상이 아닌 존재로 제한하는 국보법은 북한이 포함된 미래학이 이 사회에서 존재치 못하게 만들었다. 

남북은 1300여 년 동안 통합된 상태의 단일 공동체였다. 그런데 그 생명력이 유한한 사상 이념이 다르다 해서 철천지원수처럼 등지고 으르렁대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정치, 경제적인 발밑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분단을 이용하거나 거기에 기생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민족에 큰 죄를 짓는 것이다. 국보법이 남북의 소통을 막고 갈등을 조장하는 흉기로, 나아가 미래 세대에게 통일국가를 물려주어야 할 기성세대의 책무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국보법은 너무 오랫동안 이 사회에서 막강한 강제력을 행사해 일상의 일부분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항상 국보법을 의식하면서 대소사에 사상의 자유, 상상의 자유를 스스로 제약하는데 익숙해졌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 당시의 요구이기도 했던 국가보안법 철폐, 불평등한 한미동맹 정상화 등에 대한 공론화를 외면했다. 비핵화 남북교류협력 본격화가 가시권에 들어온 것 같은 희망적인 상황이 조성되면서 낙관적 전망만이 쏟아지는 가운데, 문재인 정부는 정작 평화통일을 위한 중대한 정지작업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아 결국 골든타임을 놓쳤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이라도 국보법 폐지에 앞장서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 시대의 운전자 역할을 자임한다면 국보법 청산부터 해야 한다. 국보법이 존재하는 한 남북한 평화 공존과 교류협력은 불가능하고 민주화는 불안전한 미완에 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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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전 한겨레 부국장, 전 한성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