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세계사 속 일본'을 통해 오늘을 보다
[프레시안 books] <일본인 이야기>
2019.11.23 10:21:29
16세기 '세계사 속 일본'을 통해 오늘을 보다
고대-중세-근대-현대로 거칠게 나눠보는 서구의 역사관을 동아시아에 맞추는 과정에서 '근세' 개념이 환영받았다. 산업 혁명~식민 제국 시대에 적용되는 유럽의 근대 시기, 동아시아에서 근세로 구분하는 데 가장 적절한 시기로 흔히 일본의 에도 시대(17세기 초~19세기 중반)를 꼽는다. 

강력하게 작동한 신분제가 사람의 직업까지 귀속하고, 바쿠후(막부) 제도가 여전히 일본을 유럽의 중세처럼 나눠놓았으며, 쇄국 정책으로 인해 유럽의 산업 혁명이 일어나지는 못했던 시기가 이 때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바쿠후 제도가 강제한 참근교대제가 대물림되는 신분제의 직업 정신, 전국시대 후 폐지된 노예제, 일본 전체를 가족화하는 정신인 '이에(家)'와 맞물려 일본의 상업화를 촉진했다. 중국 왕조와 조선만큼 관료제가 작동하지 않은 일본의 정치 제도는 번(番)주와 백성의 운명공동체적 체계와 맞물려 동아시아 어떤 나라보다 일본이 서구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바다를 무역로로 이용한 일본은 도쿠가와 바쿠후 들어서도 나가사키 등 일부를 무역로로 활용함으로써, 쇄국의 시기에도 바다를 이용해 세계를 지배해나간 유럽과 일찌감치 교역에 성공해 글로벌 무역 네트워크의 일원이 됐다. 명 제국이 원 제국과 달리 고립주의적으로 변하자, 도자기는 유럽으로 향하는 일본의 전략 수출품이 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일본의 은이 한때 세계 무역화폐로 거래되던 때도 있었다. 

태평양전쟁에 이르기까지 일본 역사를 총 5권에 나눠 기술하는 것으로 기획된 <일본인 이야기>(메디치)의 1권은 전국시대 후기~에도시대 초기 일본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서울선언>과 <갈등 도시>(열린책들)로 조선 시대에 갇힌 서울을 벗어나 '대서울'을 새롭게 조명한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가 전공인 문헌학을 바탕으로 일본 오백년 사를 입체적으로 정리했다. 

<일본인 이야기> 1권의 중요한 미덕은 단순한 역사 나열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오늘날에도 많은 일본인의 이야기 주제로 거론되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의 굵직한 인물을 통해 당대 일본의 선택이 오늘날 일본, 나아가 오늘날 동아시아와 어떤 연관을 갖는가를 꾸준히 설명한다. 책 서문에서부터 저자가 언급하듯, <일본인 이야기>는 '왜 동북아시아에서 오직 일본만이 서구의 공세를 견뎌내고 제국이 되었는가'를 중요한 문제의식의 하나로 갖는데, 저자는 행운과 노력이 모두 작용했다는 관련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곳곳에 인용하는 동시에 이를 바탕으로 저자 고유의 의견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이 문제의식이 아마도 다음 책에서도 꾸준히 이어지리라 생각된다.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중국과 일본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중국이 받은 대항해시대 유럽발 충격이 일본보다 더 컸지만 중국은 큰 나라였기에 유럽의 충격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그들로부터 배우려는 입장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일본은 중국에 비해 유럽의 충격이 크지 않았지만 국내 문제와 더불어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좀 더 컸습니다. 결국 여러 행운이 따른 덕에 일본은 유럽의 식민지가 되지 않고 독립 국가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 행운의 덕을 얻으려면 행운을 잡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강렬한 의지를 갖고 끊임없이 준비해놓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일본은 왜 식민지가 되지 않았는가'는 질문은 '왜 조선은 식민지가 되었는가'는 질문과 연동한다. 단순히 '국뽕'이나 '일뽕'의 시각에서 이 책을 소화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이유다. 특히 에도시대 일본의 사회·경제적 기반으로는 자발적 산업화가 일어나기란 불가능했다는 저자의 지적은 당대 조선을 향한 질문으로도 작용한다. 

"저는 여기서 한 가지 문제 제기를 하고 싶습니다. 하야미 아키라가 일본 학계의 통설적인 근대화론에 대해 비판한 내용이, 한국의 일각에서 여전히 끈질기게 주장되고 있는 '내재적 발전론', 즉 "일본의 식민지가 되기 이전에도 이미 한반도에는 근대화를 위한 바탕이 마련되어 있었으므로 언젠가는 공업화를 이루었으리라"는 주장을 반박하는 데에도 그대로 이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일본에서 중세와 근세 사회를 나누는 한 가지 기준은, 중세에는 기근이 일상적이었던 데 반해 근세에는 일상적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 한반도 주민의 의지와 능력은 조선시대나 식민지시대나 같았으나, 외부 충격이 오기 전까지 발휘할 길을 찾지 못한 채 소모되고 있었습니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에서 증언하듯이, 19세기 청나라가 만주 이주를 금지하는 봉금령을 해제하고, 러시아와 조선의 국경이 맞닿게 되자 조선인들은 새롭게 열린 만주와 러시아로 건너가 악착같이 일하며 정착했습니다. 비숍은 한반도의 피지배민들이 가난했던 것은 그들의 민족성이 게을러서가 아니라 국가 시스템이 잘못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하야미 아키라는 '에도시대 상업 발달이 자연스럽게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공업화를 낳았다'는 주장을 비판한다. 무엇보다 핵심은 에도시대 일본에서는 유럽과 달리 '시민'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민은 근대의 산물이자, 근대를 낳은 주체다. 자치 정신이 도시의 고도화와 시민의식을 고취했고, 이들의 자발적 역량이 유럽의 기관차 같은 질주의 원동력이 됐다. 일본의 에도시대 한계를 비판한다면, 그 비판은 고스란히 동아시아 전체를 향해야 함이 마땅하다. 

특히 <일본인 이야기> 1권에서 중요한 대목은 이 책이 당대 동아시아에 전파된 유럽 가톨릭 세력의 행보를 아주 비중 있게 짚는 부분이다. 기실 전체 6개의 장 중 3~6장의 핵심 내용에 당시 일본에 전파된 가톨릭의 영향력이 드러난다. 김시덕 교수는 <프레시안>에 기고한 정민 한양대 교수의 저서 <파란> 서평에서도 근세 가톨릭의 영향력을 되짚어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바로가기: 조선 후기 가톨릭 탄압사 드러낸 역작 <파란>

십자가는 유럽이 총과 함께 이른바 '신세계'에 들이민 도구 중 하나다. 유럽은 복음 신앙을 신 사회에 전파해 해당 지역에 유럽 정신을 집어넣고, 총칼로 현지인을 학살한 후 식민지 경제 체제를 이식했다. 우리는 흔히 '가톨릭 전파 초기 한중일 지배 체제는 숱한 가톨릭교도를 체제 위협으로 인식해 학살했다'는 정도로 이 시기를 넘어가지만, 저자는 이 해석을 극복해야 할 때임을 강조한다. 특히 이른 시기 완성된 일본과 유럽의 교역 체제에서 가톨릭의 영향력이 두드러짐을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 사례로 무역 이점을 위해 가톨릭교도가 된 오이타 당주였던 오토모 소린의 이야기가 책에서 소개된다. 

"나고야대학의 가게 도시오 교수는 오토모 소린이 스스로를 "일본 규슈 대방주"라고 소개하며 캄보디아 국왕과 교환한 서한을 검토했습니다. (...) 오토모 소린과 같은 아시안 다이묘가 신앙상의 이유와 무역상의 이익을 위해 가톨릭을 받아들이면서 '크리스천 다이묘'가 된 것. (...) 이와 같은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기존에 일본열도 내부의 문제로만 다루어지던, 또는 북동 유라시아 지역과의 관계에서만 서술되던 이 시기 일본의 역사와 문화가 전 세계적인 맥락에서 다시 해석되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한반도는 예외였지만, 명나라를 포함해서 전 유라시아 대륙이 '글로벌 히스토리'의 맥락 속에 휘말려 들어간 것입니다. (...) 1580년쯤 되면 일본의 가톨릭 신자가 10만 명을 넘어섭니다. 당시 일본의 인구에 대해선 3천만 명 안팎이라는 추측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10만 명이라는 숫자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일본 내부에서도 가톨릭은 일본의 변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됐다. 난학의 기반을 놓은 이가 루이스 데 알메이다 신부였다. 무엇보다, 가톨릭 세력은 임진왜란 시기 동아시아 역사에 깊숙이 개입하기도 했다. 이는 곧 가톨릭이 한반도 근세사에도 우리 고정관념보다 더 큰 영향을 미쳤음을 뜻한다. 한반도는 가톨릭을 통해 미약하게나마, 이 시기 세계사의 무대에 편입됐다. 적잖은 한국인이 조선 침공의 선봉에 섰던 고니시 유키나가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음을 알 것이다. 

"1586년 3월 16일, 히데요시는 오사카성에서 예수회 소속 초대 일본 준관구장인 가스파르 코엘류를 비롯해 루이스 프로이스, 오르간티노 그네키-솔도,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 로렌소 등 30명이 넘는 가톨릭 신부 및 수도사를 면담합니다. 이 자리에서 양쪽은 조선과 명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필요한 서양식 군함과 항해사를 히데요시에게 제공하는 안건에 대해 논의를 가졌습니다. (...) 알론소 산체스를 비롯한 가톨릭 신부들은 명나라에서 활동 중이던 마테오 리치를 앞세워 쉽게 명나라를 정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프로이스는 원래 중국 포교를 꿈꾸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히데요시가 조선·명나라 공격 계획을 언급하자, 이 기회에 중국을 가톨릭 국가로 만들 수 있겠다고 기대한 코엘류와 프로이스가 먼저 군사적 원조를 하겠다고 제안했으리라고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에도시대의 다양한 면모를 조명해, 동아시아 근세~근대를 세계사적으로 재해석하는 대중서는 근래 들어 한국에서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신상목 지음, 뿌리와이파리)는 일본이 메이지유신을 통해 단기간에 근대 제국으로 성장한 힘이 에도시대에서 나왔음을 짚어본다. 일본의 학자가 매우 새로운 시각으로 일본 에도시대를 비판적으로 바라본 <중국화 하는 일본>(요나하 준 지음, 최종길 옮김, 페이퍼로드)은 파격적 주장만큼이나 읽을 만한 이야기가 많다. '덕후' 팬들을 거느린 시사만화가 굽시니스트의 대작인 <본격 한중일 세계사>(위즈덤하우스)는 한중일 격동의 근현대사를 입체적으로 풀어내는 만화다. 

<일본인 이야기> 시리즈는 이 같은 조명을 총망라하는 기획이라 할 만하다. 일본을 본다는 것은 결국 서세동점의 시기~현대에 이르는 동아시아를 되돌아본다는 것이며, 한국을 되돌아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요나하 준도 지적했듯 세계적 대제국이었던 중국은 당-송대에 이르러 앞서가는 국가 체제를 만들었다. 신분제를 철폐하고 과거제를 통해 관료를 실력으로 선발하는 혁신을 이뤘다. 이 시기 중화질서에 어느 나라보다 빨리 적응한 한반도에도 혁신은 이뤄졌다. 고려시대에 정착하기 시작한 과거제는 조선에 이르러 꽃을 피웠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조선은 비록 노비제를 유지했으나 나머지 신분을 철폐해 실력 있는 자면 (이론적으로는) 누구나 성공을 꿈꾸는 사회를 만들었다. 그런데 근대 한반도에 닥친 비극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 질문에 답하는 건 결코 쉽지 않겠지만, <일본인 이야기>는 이 같은 물음에 대한 답안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줄 책이다. 

오늘날 한반도는 다시금 격랑에 흔들리고 있다. 응축된 내부 문제와 더불어, 외부의 변수가 그야말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만드는 격동의 시대 한가운데를 우리는 지나고 있다. 그 중 중요한 변수의 하나가 일본이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이라는 축을 바탕으로 과거의 갈등을 극복하지 못한 채 대립하는 이웃이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두 나라는 좋든 싫든 격동의 시기를 발맞춰 극복해야 할 공동운명체이기도 하다. <일본인 이야기>는 이 시대를 조금 더 넓은 시각에서 조명할 기회를 제공하고, 나아가 오늘날 일본과 일본인을 이해할 단초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시기적절하다. 

▲ <일본인 이야기> 1권 (김시덕 지음) ⓒ메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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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기자 eday@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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