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약탈자본과 공범자들, 그리고 검은 돈
[삶은경제] <블랙머니>를 보고, <한국의 약탈자본과 공범자들>을 읽자
한국의 약탈자본과 공범자들, 그리고 검은 돈
도둑이 들었다. 도둑은 담을 넘는 고전적 수법 대신, 영화에서나 나오는 섬세한 전략을 바탕으로 완전범죄를 기획했다. 경비를 매수해 현관문과 금고를 열었다. 일정기간 금고 주인 행세를 하다, 금고를 사겠다는 자에게 금고를 되 팔고 유유히 현관으로 걸어 나왔다. 

기획의 핵심은 경비원의 확실한 매수다. 도둑이 금고를 털고, 되 판 뒤 현장을 떠날 때까지 전체 범행을 조력할 경비원이 없다면 애초 불가능한 기획이다. 이런 도둑질이 성공한다면, 그 무용담은 당연히 책과 영화로 회자될 것이다. 보란 듯 우리 앞에 한 편의 영화 <블랙머니>와 한 권의 책 <한국의 약탈자본과 공범자들>(홍성준 저, 도서출판 레인북)이 나왔다. 

누가 현관을 열었나 : 노무현 정부

노무현 대통령 당선의 열기가 채 가시기 전인 2003년 7월 15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관계기관 10인이 참석한 비밀회동이 열린다. 재경부 금융정책국 변양호 국장과 추경호 과장, 금감위 김석동 정책국장 등 금융당국 핵심들과 이강원 행장 등 외환은행 인사들, 당시 외환은행 자문사인 모건스탠리 관계자, 그리고 법률가들이 참석했다. 문재인 민정수석이 이끌던 청와대도 이 비밀회동에 행정관(주형환)을 보냈다. 노무현 정부 출범 5개월 만에 이들이 굳이 호텔에서 비밀스럽게 모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날 이들은 금산분리원칙이 서슬 퍼런 나라에서 감히 론스타라는 외국계 사모펀드가 은행을 갖겠다고 나선 문제를 의논한다. 론스타는 부동산과 골프장 등 다양한 비금융자산에 2조 원 이상을 투자한 펀드로 산업자본에 해당 돼 은행을 소유할 수 없었다. 그런데 문제의 비밀회동 직후인 2003년 9월 4일,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갖겠다는 공식 요청(동일인 한도 초과 보유 승인 신청)을 한국 정부에 제출하고 9월 26일 승인을 얻는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금융당국은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 해당여부를 심사하지 않았고, 회계법인 확인서는 거짓으로 제출됐으며, 론스타의 동일인 재무제표도 확인하지 않은 사실이 MBC 보도로 폭로된다. 탐사보도매체 <뉴스타파>는 론스타 펀드에 투자한 한국인 론스타 임직원들을 폭로했는데, 이들 중에는 10인 비밀회동 멤버인 김석동의 처조카와 임창열 전 경제부총리의 딸도 있다. 끝이 아니다. 외환은행 인수 승인 직후인 2003년 9월 30일부터 다음달 30일(인수자금납입만기일)까지 해외에서 국내로 모두 스물 세 번의 달러 송금이 이뤄졌다. 이 중 열다섯 번의 송금을 원화로 계산하면 10억 원 단위로 맞춰진다. 사모펀드 뒤에 숨은 이 검은머리외국인의 실체는 아직도 모른다. 

개봉 5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조짐을 보이는 <블랙머니>를 본 독자들은 영화 속 관련 장면들이 생생하게 떠오르리라. 영화가 당시 청와대와 실세를 간접적으로만 묘사하는데 비해, 홍성준 씨(현 약탈경제반대행동사무국장)가 쓴 책 <한국의 약탈자본과 공범자들>은 그들의 실명과 혐의를 구체적으로 밝힌다. 이른바 '팩스 5장'으로 외환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비율을 조작해서 멀쩡한 은행을 부실금융기관으로 몰고 간 사람들, 관련자의 죽음 등 론스타 대한민국 입성기의 거친 윤곽들이 나온다. 

누가 탈출을 도왔나 : 이명박 정부

이어지는 론스타 탈출기. 여느 사모펀드처럼, 이들도 단시간 기상천외한 방법들로 외환은행, 외환카드의 골수를 빼먹고 한국시장에서 철수를 준비한다. 2006년 1월 21일, 사모펀드의 엑시트(인수기업 매각) 시점은 인수 후 3년을 넘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듯 론스타는 외환은행 매각추진을 발표한다. 시민사회와 노동계는 이를 정치권과 금융당국이 약탈자본과 결탁한 초대형 먹튀 사건으로 규정했고 투쟁을 강화한다. 검찰이 론스타게이트의 수사에 나선 것도 이 시점이다. 같은 해 6월 비밀회동 멤버인 변영호 전 국장이 구속됐고, 김석동 등에 대한 검찰 조사가 시작됐다. 수사과정에서 투기자본과 정부 간 유착 혐의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2008년 권력은 이명박 정부로 넘어간다. 노무현 정부 후반기부터 외환은행을 인수하려던 HSBC가 2009년 가을 인수를 포기했고, 하나은행이 새로 등장한 권력을 등에 업고 외환은행 인수에 나서 2012년 인수 작업은 끝났다. 탈출기의 하이라이트는 노동계와 시민사회가 론스타의 지분매각을 승인할 정부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얻을 수 없는 징벌적 매각을 요구하면서다. 이미 산업자본임이 확인된 만큼 보유지분을 장내매각토론해서 더 이상의 국부유출을 막으라는 요구였지만, 금융위원회는 다시 론스타의 손을 들었다. 

홍성준의 책 <한국의 약탈자본과 공범자들>은 론스타, 맥쿼리 등 사모펀드로 대표되는 약탈자본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를 무대로 벌인 행적들과 공모자들의 실체를 상세하게 고발한다. 그리고 이들의 약탈수법과 여기에 가담한 공범자들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단군 이래 최대의 국부유출 게이트"

론스타는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정부가 열어 준 금융시장의 정문으로 들어와, 이명박 정부가 끝나기 1년 전 당당히 정문으로 걸어 나갔다. 그렇게만 끝난 스토리가 아니다. 론스타는 현재 한국 정부에 5조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결정을 기다리는 중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금융위원회는 징벌적 매각을 결정하라는 사회적 요구를 무시하고 하나금융으로부터 5조 원의 인수대금을 챙겨 갈 수 있도록 론스타의 탈출을 도왔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된 금융당국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대한민국을 뜸과 동시에 한국정부의 방해로 매각이 늦춰졌다며 5조 원이 넘는 손해액을 투자자국가분쟁중재(ISDS) 요구액으로 청구한다. 5조 원은 지금 미국이 요구하는 방위비 분담금과 같은 규모다. 외환은행 인수 후 8년 2개월 동안 이들은 키코(KIKO)같은 고위험 파생상품을 예금자들에게 팔았고 그렇게 얻은 수익을 다시 주주(라는 이름의 자신)들에게 고배당해 제 주머니를 채웠다. 지분매각을 포함해 이렇게 한국에서 챙긴 돈이 4조7000억 원이다. 

ISDS마저 승소할 경우 이들이 한국과 최종정산하게 될 수익 규모는 어떤 외국자본도 꿈꾸기 힘든 기록적인 수준이 된다. 그래서 론스타 게이트가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국부유출 게이트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절망의 도돌이표, 문재인 정부

촛불혁명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하야하고, 노무현 정부의 민정수석이 대통령이 됐다. 신임 대통령이 임명한 초대 금융위원장 최종구. 국회 정무위에서 진행된 인사청문회에서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외환은행 인수 승인과 먹튀 방조를 당시 금융위원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다. 반성을 요구한 질문에 돌아 온 대답. "지금도 그때 상황이면 그렇게 판단하겠다." 청문회장 곳곳에서 탄식이 쏟아졌지만, 후보자는 당당했다. 

이 문제적 장면은 대단히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문재인 정부와 론스타 사태에 대한 반성이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문재인 정부의 태도는 단지 과거 잘못에 대한 부정이라는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3월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는 한국 정부와 론스타 간에 진행 중인 ISDS 소송에서 한국 정부가 론스타를 상대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인 은행 인수 자격 문제를 더는 다루지 않겠다고 한 정황을 담은 소송문서를 입수해 보도했다. 

론스타의 은행인수 자격을 인정할 수 없어야 싸울 수 있는 소송에서 이를 포기하다니! 국민세금 5조 원이 걸린 소송이 진행 중인 판국에 금융당국의 수장으로 임명된 사람의 입에서 "그 판단은 옳았다"는 말이 나온 상황과 절묘하게 맞물린다. 정부는 사실상 5조 원 소송 포기나 다름없는 이 의혹과 관련해 국회나 언론에 어떠한 설득력 있는 해명도 내놓지 않고 있다.  

퍼즐맞추기 : 론스타, 은산분리 폐지, 대주주자격심사 완화, 사모펀드 확대
 
문재인 정부는 출범 1년여 만에 인터넷전문은행 도입을 이유로 은산분리원칙을 사실상 폐기하더니, 한 발 더 나아가 인터넷전문은행의 대주주 자격 심사 기준도 대폭 완화했다. 결과적으로는 금융 산업 전체의 건전성과 금융공공성을 위협할 수 있는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이런 모습은 본질적으로 16년 전 론스타의 대주주 자격 심사에 임했던 노무현 정부의 태도와 흡사하다. 

문재인 정부 초대 민정수석 조국은 법무부 장관 임명을 앞두고 자신과 가족의 재산을 사모펀드에 투자한 이유를 묻자 "주식은 안 되지만 펀드는 '가능'하다고 해서"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은 민정수석이 주식 투자는 못해도, 사모펀드 투자는 가능한 나라라는 말이다. 론스타 게이트의 핵심의혹, 권력 실세로 추정되는 검은 머리 외국인의 실체를 여전히 밝히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그 것이 가능한 나라, 권력자들이 사모펀드에 숨는 나라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청와대나 조 전 장관은 몰랐을까? 

판단하기 힘들다면, <블랙머니>를 보고 <한국의 약탈자본과 공범자들>을 읽자. 사모펀드가 보장하는 고도의 익명성 뒤에 숨어 정책 결정에 개입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고위관료와 정치인을 밝혀내자는 것이 <블랙머니>와 <한국의 약탈자본과 공범자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핵심 메시지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heartsutra@naver.com 다른 글 보기
▶ 필자 소개
풀뿌리신문 기자로 출발했지만 정의당에서 '노유진의 정치카페'를 기획하고 제작하면서 PD라는 명함을 얻었다. 짧은 국회보좌관 활동을 거친 뒤, 지금은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에서 조직국장으로 일하며 조합원들과 함께 경제 팟캐스트 ‘삶은경제’를 제작하고 있다. 잘 먹고, 잘 쉬고, 잘 자는 일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