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총장님, 쿨하지 못해 미안해
[기자의 눈] 이명박이 '쿨'하지 못했으면 이상득 구속 못할 뻔?
2019.10.17 23:58:38
윤석열 총장님, 쿨하지 못해 미안해
이명박 정부는 '쿨'했다. 윤석열 검찰총장 말대로다. 

얼마나 쿨했냐면, 검찰이 정연주 KBS 사장을 기소하게 뒀다.(2008년 8월) 기소 이유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 2005년 정부에 낸 법인세를 환급받을 수 있었는데, 환급을 덜 받았다는 이유가 '배임'에 해당한다는 황당한 이유였다. 정부에 세금 더 낸 게 범죄란다. 이런 말도 안되는 기소를 하는데도 가만히 있었던 이명박 정부는 아주 '쿨'했다. 정연주 사장은 후에 무죄가 났고, KBS에서 해임된 것도 무효 결정이 내려졌다. 

강동순 방송위원회 상임위원과 유승민 한나라당 의원 등이 17대 대선 전인 2006년 11월에 만난 자리에서 "우리가 정권을 찾아오면 방송계는 하얀 백지에다 새로 그려야 된다"며 "KBS 노조가 제대로 들어서야 정연주 사장을 견제할 수 있다"고 한 발언들은 모두 우연일 것이다. 

2008년 4월 MBC PD수첩이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를 제작해 방송을 한 것도 검찰은 '쿨'하게 기소했다. 담당 검사인 임수빈 당시 형사2부장이 무리한 수사에 반발해 스스로 옷을 벗었을 정도로 '쿨'한 수사였는데, 방송국을 탈탈 털었음에도 후에 결국 무죄가 나왔다. '쿨'하지 못한 법원 탓이었을 것이다. "김재철 MBC 사장이 '큰집(청와대)'에 불려가 '조인트' 까였다"(김우룡 당시 방문진 이사장)는 분위기 속에서 그 정도로 끝났으면 '쿨'한 수준이리라.

BBK 수사 검사들이 줄줄이 승진한 것처럼 방송국을 탈탈 털던 검사들도 줄줄이 승진했다. 

생각해보면 볼수록 이명박 정부는 정말로 '쿨'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도 '쿨'하게 진행하도록 검찰에 날개를 달아줬다. 국정원 정보관이라는 직원들이 감히 이인규 당시 대검 중수부장을 찾아가 당당하게 노 전 대통령 측이 박연차에게 받은 시계를 논두렁에 버린 것으로 공작하자고 제안했는데도 이인규는 야단을 치고 돌려보냈다고 한다. 이는 이인규의 주장인데, 그의 주장대로라면 '논두렁 시계' 보도는 없었어야 했지만, 검찰발로 논두렁 시계 보도가 왜 나갔는지는 아직까지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하는 국정원장의 부하들이 검찰청을 제집 드나들듯 들락날락거리긴 했어도, 뭐, 윤석열 총장 말대로 '쿨'했을 것이라 믿는다.  

이명박 대통령은 '스폰서'를 끼고 있던 천성관 씨를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낙마 했다. 아니, 고작 낙마 하는데 그쳤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천성관 씨의 후임으로 만약 임명됐더라면, 조국 법무부장관 수준으로 천성관 씨를 수사했을 것이지만, 이명박 정부는 '쿨'했으니까.

▲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검 국정감사장에 출석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천성관 씨의 후임 김준규 검찰총장 시절인 2010년, 세상을 뒤흔들었던 '스폰서 검사' 사건 수사는 어떠한가. 대검찰청이 진상규명위원회를 꾸려 '스폰서 검사'를 접대한 건설업자의 '접대 리스트'까지 확인하고, 검사장이 문제의 건설업자 사건에 개입했다는 게 드러났는데도, 문제의 '스폰서 검사'는 옷을 벗는데 그쳤다. 부인, 아들, 조카까지 탈탈 털지 않을 정도로 이명박 정부는 '쿨' 했다. 벤츠 검사 사건도 그랬다 검사가 수천만원의 뇌물을 받았는데, 이게 그냥 '연인 사이의 선물' 정도로 결론이 났다. 방탄 검찰은 이명박 정부가 '쿨'해서 가능했던 일들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아들이 청와대 돈을 끌어들여 내곡동 땅을 사저 부지로 사들였고, 그 과정에서 대통령의 아들이 이익 본 정황이 있었는데, 검찰은 '쿨'하게도 무혐의 처분을 했다. 특검이 시작됐지만, 청와대 압수수색도 못할 정도로 이명박 정부는 '쿨'하게 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 영포 라인의 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은 어떤가. 검찰이 얼마나 '쿨'하게 수사했느냐 하면, 재수사를 하는 지경에 이를 정도로 첫 수사를 엉망으로 해 냈었다. 

쿨한 이명박 정권. 윤석열 검찰총장이 17일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이런 말을 했다. 

"직급은 달랐지만 제 경험으로만 하면 이명박 정부 때 중앙수사부 과장, 특수부 부장으로서 수사했는데 대통령 측근과 형, 이런 분들을 구속할 때 별 관여 없이 상당히 쿨하게 처리했던 기억이 난다"

저축은행에서 불법 자금을 받아 구속된 대통령의 형 이상득,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에서 돈 받아서 구속된 측근 천신일, 파이시티 인허가 로비로 구속된 최시중, 박영준 같은 사람에 대한 수사가 잘 진행된 것은 이명박 정부가 '쿨'해서가 아니라, 원래 그렇게 수사해야 당연했던 것들이다. 

당연한 일을 이명박 정부의 '쿨'함으로 표현한 것도 기가 차지만, 이명박 정부가 얼마나 '쿨'하지 못했길래 '범죄자를 구속하게 해주니 쿨했다'고 얘기했을까. 이게 검찰 수장이 할 말일까?

이명박 정부 시절은 검찰이 가장 추악했던 시기다. 윤 총장이 평검사였으면 '제 경험'을 회상하며 '쿨'하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지금 직급은 그 직급이 아니다. 검찰의 수장으로서 국정감사에 나왔으면 검찰의 추악했던 과거사에 대해 통절히 반성하고 사죄해도 모자랄 판인데, '쿨' 운운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절망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10년 남짓 지난 시절을 '쿨'했다 회상하는 걸 보니 세월이 참 무섭다. 검찰이 민심을 못 얻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이 글은 이명박 정권 시절 검찰의 추악했던 과거사가 잊힐까봐 적어두는 글이다. 언급하지 않은 검찰의 흑역사는 차고 넘친다. 

일화를 하나 더 소개한다. 이명박 정권 시절, 검찰을 '개'로 표현한 한 일간지 시사만평가에게 검찰 관계자가 '가만두지 않겠다'고 출입 기자를 통해 전한 일이 있다. 정권을 뒷배 삼아 방송사, 언론 때려잡던 그 시절 검찰은 퍽이나 '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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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기자 ilys123@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