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세력의 '승리'가 두려운 이유...다음은 어딜까?
[기자의 눈] 연세대 '인권 수업' 방침 후퇴 유감
2019.09.30 17:16:11
혐오세력의 '승리'가 두려운 이유...다음은 어딜까?
기자는 사춘기를 대학 시절에 겪었다. 참 지독했다. 모든 사람들이 대학만 가면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얘기 했었는데 막상 대학에 가니 뭘 할 수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뭘 하고 싶어 하는지도 몰랐다. 사복입고 화장품 좀 찍어 바른 거 빼면 고등학교 때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게다가 적당히 점수 맞춰서 쓴 전공은 도무지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매 시간 마음속으로 공허하게 '이걸 왜 해야하지'하던 고민은 '내가 하고 싶은 건 뭐지'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지'로 흘러갔다. 그래, 그게 사춘기였다.

우리나라의 중·고등학교, 입시제도가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10대 시절엔 한 가지 목표, 한 가지 방법만이 제시됐다. 존재는 성적으로 증명됐다.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마다 질타 받았고 남들보다 뒤쳐질까봐 불안했다. 정작 그 과정에서 나 자신에 대한 사유의 여지는 없었다.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 이 기본적인 것을 아는데 몇 년이 걸렸는지 모르겠다. 시행착오도 참 많이 겪었다.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은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과 함께였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러 경험을 겪으며 그 속에서 내 모습을 발견해 나갔다. 책에 나오지도 않고 누가 알려주는 것도 아니었다. 

연세대가 '연세정신과 인권'이라는 인권교육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한다 했을 때 '이거다' 싶었던 건, 이런 기자의경험 때문이었다. 인권교육이라는 게 그런 것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 관해 생각해 보는 것. 내가 전혀 모르던 시각과 세상을 배우는 것이다. 인권교육은 20대 초반, 대학이라는 새로운 사회에 발을 들이며 다양한 경험과 사회적 관계를 맺을 신입생들에게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연세대는 지난 19일, 돌연 해당 과목을 필수과목에서 선택과목으로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8월 중순부터 보수단체의 항의 집회가 일어난 지 거의 한 달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9월 10일까지만 해도 예정대로 강의를 진행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터였다. 학교에서는 '학내외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다'라고 밝혔지만 학교 안팎으로 혐오세력에 굴복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학생들과 동문들은 입장문을 내고 온라인으로 연서명을 받는 등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 연세대 전경. ⓒ프레시안(조성은)


'연세인권과 정신' 강좌는 인권·사회정의·젠더·아동·장애·노동·환경·난민 등 13개의 주제를 15명의 교수진이 가르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인권교육을 반대한 이들은 '젠더'와 '난민'을 문제 삼았다. '젠더'는 여성우월주의와 동성애를, '난민'은 이슬람의 확산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젠더'를 맡아 공격의 대상이 된 김현미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특정 집단이 선호하지 않는 지식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대학이 하루아침에 커리큘럼(필수지정 철회)을 바꿨다"라며 애석해했다.

이번 사태가 '충격'과 '공포'로 다가온 건 두 가지 이유에서다. 먼저 혐오세력이 연이은 승리를 거두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만들어지긴 했지만 충남 인권조례를 폐지시켰던 게 그들이었고, 경남 인권조례는 반대의 벽에 부딪혀부결된 바 있다. 차별금지법은 2007년부터 세 차례나 발의됐지만 번번이 혐오세력의 반대로, 국회에서 제대로 된 논의조차 하지 못한 채 폐기됐다. 

퀴어축제를 방해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건, 예삿일이다. 그러나 '대학 커리큘럼'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대학은 어떤 경우에도 학문의 자유가 지켜져야 하는 최후의 보루"라며 "외부세력에 의해 커리큘럼을 바꿨는데 이게 그들에게 어떤 시그널을 줄지, 다음은 어디에 손을 뻗을지 크게 우려가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더욱 공포로 다가오는 것은 대학과 지자체, 정부 등 책임 있는 의사결정권자들이 혐오세력의 반발에 무기력하게 물러선다는 점이다. 조금만 의지를 발휘하면, 갈등을 조율하거나 설득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인권교육이 '동성애를 전파한다'와 같은 터무니없는 소리에 공적기관이 무릎 꿇었다는 것이 답답할 따름이다.

이번 사태에서 연세대는 한발 물러섰다. 기득권인 보수 세력과의 충돌을 피하고 적당히 사태를 마무리하고 있다. 당장은 이렇게 끝나겠지만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좀 더 생각해봐야 한다. 가장 마음이 아픈 것은 연세대 내에 있을 소수자들이다. 커리큘럼도 지키지 못한 대학이 학내 구성원의 인권 보호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할까. 대학 내 여성, 성소수자, 무슬림 학생들은 이번 사태를 지켜보며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처절하게 자신의 존재를 외치는 이들이 있다. 존재 자체가 투쟁이고 저항인 이들이다. 인천공항에는 몇 백일 째 난민심사를 기다리는 루렌도 가족이 있다. 마스크를 쓰면서도 광장에 나와 디지털성폭력 규탄 시위를 하던 여성들이 있다. 망루에 올라간 노동자가 있고 매년 단 하루 광장에 모여 현란한 축제를 벌이는 성소수자들이 있다.

그래서 연세대의 이번 사태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대학이 아니면 대체 어디서 인권을 배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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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은 기자 pi@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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