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은 극우의 망망대해에 살고 있다"
[프레시안 books] <일본 '우익'의 현대사>
2019.08.25 13:51:46
"일본인은 극우의 망망대해에 살고 있다"
1950년 10월,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을 11개월 앞두고 연합군최고사령부(GHQ)는 일본 전범들에 가한 공직 추방 조치를 해제한다. 전후 세계에 들불처럼 번지는 공산주의 대항을 위해 이들의 관료적 실력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1951년 2월 8일, 점령군의 감시를 피해 흩어졌던 우익들이 '조국방위간담회'를 열고, 이 회의는 이후 '대일본애국단체연합·시국대책협의회'로 이름을 바꾼다. 일본 우익이 부활하기 시작했다. 

조국방위간담회개 개최된 같은 해, 일본 전후 가장 유명했던 우익 활동가 아카오 빈이 대일본애국당을 창당한다. 젊은 시절 사회주의에 기울었던(상당수 일본 우익이 청년기 사회주의 사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훗날 국가사회주의자로 전향했다. 

아카오는 지금의 일본 우익과는 결이 조금 다른 인물이었다. 그는 투철한 반공주의자였다. 전후 일본이 미국의 우산 아래에 들어가자, 그가 주로 겨냥한 적은 일교조(일본교직원조합)였다. 아이들에게 공산주의 사상을 가르친다는 이유였다. 한국 극우 세력이 전교조를 주요 적으로 타깃팅한 것과 같다. 주요 목적이 반공이었기에, 같은 반공 국가인 한국과는 친하게 지내야 한다고도 아카오는 주장했다. 독도 영유권 분쟁이 일어났을 때 그가 남긴 말은 유명하다. "그딴 섬은 폭파시켜버리면 돼." 미국 주도의 동맹 체제에서 공산주의를 막는 것이 그의 가장 큰 목적이었다. 한국 극우와 결이 비슷하다. 

아카오 사상이 한국 극우와 조금 다른 지점이 있다. 그는 1951년 대일본애국당 창당 때부터 개헌을 요구했다. 전쟁 직후부터 일본 극우의 핵심 목표는 개헌이었다. 

<일본 '우익'의 현대사>(야스다 고이치 지음, 이재우 옮김, 오월의봄 펴냄)는 한일 갈등이 첨예한 이 시기, 현대 일본을 주도하는 일본 우익을 뿌리부터 파헤치는 책이다. 저자는 지난 2012년 출간돼 한국에서도 주목받은 논픽션 <거리로 나온 넷우익>(김현욱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한국 발매는 2013년)에서 당시 일본의 문제적 사회현상이었던 넷우익을 파헤친 데서 한발 나가, 이번에는 (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 일본 극우 사상사의 핵심 인물을 재조명하고, 연관 인물들과 인터뷰해 방대한 극우 계보를 정리했다. 

굳이 '방대하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까닭은, 일본 극우가 하나의 사상으로 똘똘 뭉친 집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일본 극우를 크게 여섯 갈래로 나눈다. 시대 흐름에 따라 이들 계보가 뭉치고 흩어지면서 현대 일본 극우의 극단적 모습이 서서히 갖춰지는 모습을 좇는 독서 경험은 매우 흥미롭다. 

예를 들어 대일본애국당과 같은 해 출범한 협화당(協和黨, 교와토)은 일본 재군비 반대, 전쟁 포기, 엄정한 중립 국가를 지향한다. 반공 구호조차 외치지 않는다. 이 당의 뿌리가 이시와라 간지가 조직한 전전 우익단체 동아연맹이기 때문이다. 만주침공(만주사변)을 주도한 인물로 알려진 이시와라 간지는 아시아 각국이 우호적으로 연대해 미국과의 '인류 최종전'에 대비해야 한다는 사상을 가졌던 인물이다. 전후 일부 리버럴 중에도 (무력으로, 인위적으로 만든 국가에서 평화 사상을 논한다는 모순을 무시하고) 그의 오족협화(五族協和) 사상에 심취한 이가 있었다. 한국에는 최영의로 알려진 가라테 고수 오야마 마스다쓰의 스승으로 재일민단 단장을 지내기도 한 조영주도 그의 제자다. 

다른 극단에는 대일본애국단체연합시국대책협의회 일부 구성원으로 대표되는 극단적 천황 주체 사상자도 있다. 이들은 간단히 말해 현 일본 지배 체제 자체를 부인한다. 천황이 절대권력을 쥐고 다스리는 아래 만민이 평등하게 존재한다는, 일제 강점기 그 모습으로 일본이 돌아가야 한다고 외치는 이들이다. 책에 묘사된 이들의 회의에서 나오는 발언은 독자를 실소케 한다. "폐하께 뭔가를 바란다는 것은 신민의 분수를 넘는 행위입니다." "(절대권력자인 천황에게 뭔가를 바란다는 것 자체가 무엄하므로) 우익씩이나 되는 자가 자기 폐하를 야스쿠니로 데려가는 행위를 허용할 수 있겠습니까?" 독일 극우의 핵심으로 꼽히는 독일을 위한 대안(AfD) 일부 인사의 경우 히틀러의 제3제국 자체를 부정하고 비스마르크 집권기인 통일 독일(제2제국)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상을 가진 이가 있는데, 그와 비슷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이들은 북유럽 극우 일부와도 상통하는 모습을 보인다. 북유럽 일부 극우주의자는 기독교 세계관이 통일한 현대 유럽 자체를 적대한다. 노르딕 신화 시대의 재현을 이상향으로 삼는다(한국에도 이 같은 극우가 있다고 봐야할 듯하다. 환단고기 등을 추종하는 이들이 사회 곳곳에 있다.).

▲ 일본의 패전일이자 한국의 광복절인 지난 15일 일본 도쿄(東京)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에서 극우들이 전범기인 욱일기(旭日旗)를 들고 선 모습. ⓒ연합뉴스


단연 한국 독자의 관심을 끄는 부분은 4장 '신우익의 탄생'과 5장 '종교 우파와 일본회의'다. 아베 정권의 핵심 지지층인 현대 우익이 이들 장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1960년 우파 대학생 조직 일본학생회의(JASCO, 자스코)가 출범한다. 1967년 와세다대학에 재학 중이던 야마우라 요시히사가 의장이 된 후부터 자스코는 친미, 반공으로 대표되던 기존 일본 우익 사상과 결별을 선언한다. 자스코는 얄타회담(Y)으로 인해 미소 패권 체제가 확립되고, 포츠담회담(P)으로 인해 일본이 미국의 하부 동맹국으로 떨어졌다고 규정하고 이 'YP 체제' 극복을 목표로 내건다. 같은 60년대, 일본학생동맹(일학동), 전국학생자치체연락협의회(전국학협) 등 우파 학생 조직이 연달아 등장한다. '신우익'이 탄생한 순간이다. 특히 전국학협 출신 상당수가 현 일본 극우의 대표 조직인 일본회의로 들어갔다. 이들은 대체로 반 YP 체제, 점령 헌법 타도(개헌), 반일교조 등의 구호를 목표로 내걸었다. 마치 한국의 학생운동세력이 이후 민주 세력의 중심으로 성장하듯, 일본에서도 격동의 60년대를 보낸 우파 대학생들이 극우의 핵심이 된다. 이들은 넷우익이 인터넷 시대 새로운 주류가 될 때까지 일본 우익의 핵심이 되었다. 

학생운동 시대가 퇴조하고 1970년대가 열린다. 일본청년협의회가 이 해 조직된다. 1930년 탄생한 신흥종교 생장의 집이 이 조직의 모태다. 이 조직은 1974년 일본을 지키는 모임으로 이름을 바꾼다. 일본을 지키는 모임의 핵심 멤버는 전부 종교(신토) 관계자들이었다. 1981년 출범한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와 합친다. 1997년, 그 유명한 일본회의가 탄생한다. 이들은 전후 체제 자체를 부정한다. 전후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이 같은 사고는 2000년대 들어 일본 길거리를 혐오로 뒤덮은 이른바 넷우익에게까지 이어진다. 

학생운동의 퇴조와 함께 우파 학생운동도 힘을 잃자, 생장의 집은 일본 우익의 핵심으로 떠오르게 된다. 생장의 집 출신의 정치가와 운동가들이 현대 극우 움직임을 주도한다. 일본회의의 중심에 종교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논란에서 보듯, 지금도 천황제, 신토는 일본 극우주의의 정수다. 

이들의 대중운동은 결실을 하나하나 맺어간다. 대표적인 사례가 원호법제화다. 원호법제화운동의 성공 후 탄생한 일본회의는 개헌, '교육 정상화', 자주방위 등 핵심 3대 안건을 일본 사회에 요구하고 나섰다. 그 결과는 우리가 익히 아는 바다. 새역모 등으로 대표되는 퇴행과 군국주의 사상이 오늘날 일본 사회에 깊숙이 자리하게 됐다. 저자는 넷우익이 판치던 시절과 달리, 오늘날 일본 길거리에서 과거처럼 조선인 등 외국인을 혐오하는 집회를 자주 볼 수 없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제 우파가 너무나 당연한 주류가 되어버려서, 그런 모임 자체가 필요 없어졌다고 말이다. 

오늘날 일본회의는 회원 4만여 명 규모다. 일본 전국 47개 도도부현 본부 외에도 243개 지부를 두고 있다. 일본회의를 지원하는 국회의원 조직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회장 후루야 게이지 중의원)'가 존재하고, 이 모임 소속 국회의원은 280명에 이른다. 아베 수상이 간담회 특별고문이고, 현 아베 내각의 각료 대부분이 이 모임 멤버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길거리에 머물렀던 일본 극우는 아베 내각 들어 정권과 한 몸이 됐다. 

아베 내각이 주도하는 개헌 목표는 '전쟁 가능한 국가'로 일본을 바꾸는 것 정도라고 알기 쉽다. 일본회의의 요구는 한발 나간다. '천황 폐하께서 일본국을 대표하는 원수임을 명기'하는 것도 이들의 개헌 목표다. 국기국가법 제정운동, 외국인의 지방 참정권 반대운동, 교육기본법 제정운동 등 이들의 모든 극우적 백래시의 핵심 목표는 천황 국가로의 회귀와 민주주의 반대다. 

지난해 2월 23일, 도쿄도 지요다구의 조선총련 중앙본부에서 5발의 총성이 울린다. 현행범으로 56세 우익 활동가와 46세 전직 폭력단원이 체포된다. 이 활동가의 딸은 한국 누리꾼에게도 어느 정도 얼굴이 알려져 있다. 2013년 오사카 쓰루하시에서 재일조선인을 겨냥해 "난징대학살이 아니라, 쓰루하시대학살을 실행하자"고 목소리를 높인 여중생이 주인공이다. 일본회의로 대표되는 극우조직과 넷우익이 결합하면서, 일본은 점차 더 극우로의 질주를 가속화한다. 저자는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사회의 극우화다. 우리는 우익의 망망대해에서 살고 있다." 아베 정권의 핵심 지지층은, 생각 이상으로 위험할 지도 모른다. 여러 의미로 위험한 시대를 지나가고 있다. 한일 갈등이 고조화하는 시기, 이웃 일본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읽어볼 만한 책이다. 

▲ <일본 '우익'의 현대사>(야스다 고이치 지음, 이재우 옮김) ⓒ오월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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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기자 eday@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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