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아베운동'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
[기고] '반일본' 가짜뉴스 거르는 것도 중요
'반아베운동'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
애국은 양날의 칼이다. 애국은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도 해주지만 국민을 바보로 만들어 잘못된 길로 빠지게 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SNS와 블로그를 통해 미력하나마 정말 지겹도록 수도 없이 합리적 사고와 판단을 강조해왔지만, 역부족이랄까.

'무슨 무슨 번호로 전화가 왔을 때 받으면 거액이 빠져나간다'라거나 몇 년이고 매번 똑같은 '오늘 밤'에 '혜성이 지나가면서 컴퓨터가 망가지니 다 꺼놓으라' 운운하는 마치 변종 행운의 편지와 같은 가짜뉴스를 '조심해서 나쁜 건 없으니'라는 순진한 생각으로 퍼 나르는 분들.

심지어 외국 기자가 쓴 책 내용이라면서 <한국인을 말한다>라는 실존하는 책 제목만 빌려(?)와 실제 책과는 아무 상관 없는 황당한 주장을 지어낸 글을 감탄(!)하면서 마구 퍼 나르는 분들.

최근엔 한글 발음이 같다고 일제시대 마지막 조선 총독이었던 아베(阿部) 노부유키가 현 일본 총리 아베(安倍) 신조의 할아버지라는 멍청한 소리를 하는, 더구나 아무 근거도 없이 아베 노부유키가 20년 뒤 돌아오겠다고 했다는 허무맹랑한 주장이 담긴 글이 한일분쟁을 타고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가고 있다.

목적이 좋으면(?) 수단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천박한 편의주의적 사고 수준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이 애국의 전선에 뛰어들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런 황당한 주장들이 정작 그 '애국' 자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도움이 될지 오히려 해가 될지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없고 판단할 능력도 없는 분들이 한둘이 아니다.

위에 아베 노부유키 어쩌고 하는 글을 만일 정작 일본 우익들이 알게 된다면 도대체 뭐라고 할까? 한국인들은 비열해서 없는 말도 지어낸다고 비웃지 않을까? 전 세계적으로 이런 글이 알려지면 그야말로 나라 망신인데, 이 글이 한국을 돕게 될까? 일본을 돕게 될까?

이런 예들은 물론 '오버'일 수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이런 사고의 한계가 갖는 위험성일 뿐, 그런 위험성이 구체적으로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나타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독도 문제가 처음 본격적으로 불거졌을 당시, 전국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포스터 그리기 대회가 있었다고 한다.(내가 어린 시절에, 해마다 때만 되면 반공 글짓기, 표어 만들기, 포스터 그리기 대회가 열렸던 기억이 난다.)

당시 인터넷에 돌던 그 작품 중 하나가, 일본에 핵폭탄이 떨어져 버섯구름이 포스터 배경 가득 피어나는 그림이었다. 애당초 이 그림을 그린 누군지 모를 초등학생은 차치하고, 이걸 인터넷에 퍼 나르던 사람들은 모두 통쾌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정작 난 이 포스터를 보는 순간 모골이 송연했다. 이게 만에 하나 혹시라도 외부(세계)에 알려진다면? 일본인 누군가가 이걸 보고 전 세계적으로 퍼 나른다면? 세계인들도 이 그림을 보고 동조해줄까? 같이 박수를 쳐줄까? 유감(?)스럽게도 세계인의 반응은 그 전혀 반대였을 것이다. 아마도 전 세계가 경악을 했을 테고, 더구나 (무슨 이유로든 누군가에게 핵폭탄으로 징벌할 수 있다는) 이런 반인류적이고 야만적인 그림을 초등학생이 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한국인이 반인륜적인 민족으로 지탄의 대상이 됐을 것이다. 어쩌면 이 그림 하나로 세계 여론이 한국을 비난하고 일본에 동조하는 분위기로 바뀌게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하면, 내가 너무 '오버'하는 걸까?

이 그림을 퍼 나른 사람들은, 그 시점에서의 사고로는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이게 왜 문제가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반핵운동과 평화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전통적으로 현대사 속 한일 분쟁에서 군국주의를 지향하는 일본 우익에 대항하는 한국인들은 평화를 염원하는 주체이기 때문에 평화를 사랑하는 전 세계인들이 한국을 지지하는 것인데, 정작 그 한국이 핵폭탄으로 일본을 폭격하는 그림에 열광한다? 선의와 무지가 만나면 재앙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분들은 과연 생각이나 해봤을까?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지금은 그 그림을 다시 찾아보려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비슷한 발상의 또 다른 그림들이 눈에 띈다. 뭐랄까, 조마조마 살얼음판을 밟는 기분이다.

어쨌든 피할 수 없게 된 한일전은 국운이 달린 심각하고 중대한 분쟁이다. 사실상의 전쟁 상태나 다름없다. 이 싸움은 말 그대로 한국과 일본의 싸움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이 한 편이고, 양국의 극우세력들이 한 편인 싸움이라고 거듭 강조해 왔다.

그런 싸움의 성격, 본질, 그리고 방향과 별개로 애국이란 과잉 자의식에 사로잡혀 자신의 낮은 사고 수준에서 싸움에 뛰어들고 돌을 던지고 총을 쏘다 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돌 던질 힘이 안 되는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돌을 던지다 보면 정작 앞에서 싸우는 자기편 뒤통수를 때리게 되고, 총 쏠 능력이 안 되는 사람들이 총을 난사하다 보면 오발로 같은 편에게 총상을 입히게 된다.

최근 또 많이 도는 사진 한 컷이 있다. 아마도 이 사진을 처음 보는 분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오염토(방사성 폐기물)를 잔뜩 쌓아둔 옆에서 농사를 짓는 이 사진은 전달력이 확실하다. 문제는, 어설프게 같이 붙여놓은 그 아래 사진이다.

▲ SNS를 떠도는 문제의 '가짜뉴스'



사진을 잘 들여다보면 영상에 들어간 자막 같아 보인다. 설마 정규 방송에서 다뤘을 리는 없겠고, 아마도 유튜브 같은 데 올라온 영상의 한 장면이 아닌가 싶지만, 어쨌든 원본 영상은 찾지 못했다.(어쩌면 유튜브 속성을 보아 비슷한 영상들이 한둘이 아닐 수도 있겠다.) 자막엔 버젓이 '쌀을 추수하고 있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이 글을 읽는 누구나, 당연히 후쿠시마에 거주하는 농부들이 저렇게 방호복을 입은 채로 농사를 짓고 추수를 하고 있다고 착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난감하게도, 이 사진에 담겨 있는 장면은 일상적인 농사가 아니다. 후쿠시마 지진 1년 뒤, 해당 지역에 대한 본격적인 방사능 제거작업에 앞서 오염 현황을 확인하기 위해 샘플을 채취하는 모습이다. 아직 방사능 제거가 시작되기도 전이니 당연히 방호복을 입고 있는 것이다.(어떤 이들은 이 얘기를 읽으면서, 또 특유의 흑백논리로, 그래서 후쿠시마 오염이 사실이 아니라고? 지금 일본 편 드는 거냐? 라고 발끈하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의도는 전혀 없으니 안심하시길.)

'사실관계 따윈 상관없어' 하는 무지막지한 사고를 바탕으로 '사실'인 윗 사진과 '사실이 아닌' 아래 사진을 합성해서 같이 보여주면, 이건 아래도 사실로 믿으라는 얘기가 될까, 위도 사실이 아니라는 얘기가 될까? 일본 우익이 이런 글(사진)을 보면, 화들짝 아파할까, 오히려 신이 나 할까? 아베 노부유키 얘기에서도 했지만 "한국인들은 사실을 왜곡한다"고 전 세계를 상대로 역선전의 소재로 삼지 않을까? 이(사진을 합성한) 사람이 한 건 과연 애국일까 이적행위일까?

이 사진의 출처를 찾을 수 있을까 해서 인터넷 검색을 하는데, 결국은 걱정(?)하던 일이 벌어진 걸 알게 됐다. 토마스 맥도넬(Thomas McDonell)이라는 미국의 유명 배우가 있다. 평소 한국을 사랑한다고 해서 한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배우라고 한다. 이분이 SNS로 위 방호복 입은 사진을 공유하면서 이게 후쿠시마에서 실제로 추수하는 장면이라는 설명과 함께 도쿄 올림픽에 대해 걱정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일본 정부나 극우세력에게 그야말로 아주 좋은 먹잇감을 던져준 셈이고 (그나마 다행이랄까. 그 글이 올라온 지 한 달 가까이 지났지만, 일부 SNS 사용자들을 넘어서 화제가 되고 있진 못하다. 누군가는 그 글이 더 많이 알려지지 못한 게 유감스럽게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나는 진심으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후쿠시마에 대한 모든 우려, 비판 글이 모두 조작이고 왜곡이라고 역선전할 빌미를 던져준 셈이다. 그야말로 아무 생각 없이.

여담이지만, 정작 인터넷에는 이 사진을 공유하면서 맥도넬이 공유했다는 걸 강조한 글이 많이 보이는데, 이건 마치 <조선일보>가 가짜뉴스를 만들어 내고, 이걸 모 정당 의원이 국회에서 인용하고, 다시 <조선일보>가 국회의원 발언을 보도하는 식의 루틴처럼 보인다. 처음 조작된 가짜뉴스를 팩트로 기정사실화하는 패턴의 '애국 버전'이랄까. 

쉽지 않은 싸움이다. 지레 겁을 먹고 자기 비하를 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 되지만, 뜨거운 가슴에 더 뜨거운 머리로 싸워서는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다. 

일본과의 싸움이 아니라 아베와 극우세력에 대한 싸움으로 정확히 초점을 맞추는 것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아베를 무너뜨리는 힘은 한국보다 일본 시민사회 안에서 나와야 한다. 우리의 싸움이 일본 시민운동의 정치력을 강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아니 반대로 혹시라도 방해가 되거나 오히려 아베 정권을 돕는 결과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더욱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

누구는 일본엔 시민이 없고 신민(臣民)만 있다고 주장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사실은 그 반대다. 일본에는 시민이 있지만 한국에는 시민이 약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일본의 풀뿌리 시민운동은 강하지만 정치적 시민운동이 약하고, 한국은 정치적 시민운동은 강하지만 일상적인 풀뿌리 시민운동이 약하다. 한국의 시민운동을 가리켜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고 하는 비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광장에 모여 정권을 끌어내린 촛불을 두고 이것이 일상적인 시민의 힘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혹시 관심 있는 분들이 계시면, 최근 개인 블로그에서 이에 대해서 언급한 글을 참고해주시기 바란다.(☞ 바로 가기 : "한일전이 아닙니다. 한일 시민이 함께 아베+토왜와의 싸움입니다!!")

일본에서도 미약하지만 최근 자발적인 '반(反)아베 운동'이 커지고 있다. 일본에서 벌어지는 이 싸움을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 애국이라는 자기 만족에 빠져 이적행위를 하는(결과적으로 아베를 돕는) 일은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원천 차단은 불가능할지라도, 설령 부작용이 있을지라도 한국 시민들이 최대한 적극적으로 막아야 한다.

나는 왜 싸우는가? 이기기 위해 싸우는가, 그저 당장 싸운다는 자기 만족을 얻기 위해 싸우는가. 가슴만 차가운 사람도, 머리만 뜨거운 사람도, 우리 싸움엔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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