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여정 통해 판문점서 조의문 전달
남북관계 교착 속 예우 갖추기 고심한 듯
2019.06.12 16:22:48
北, 김여정 통해 판문점서 조의문 전달
북한이 고(故) 이희호 김대중 평화센터 이사장에 대한 조문을 오지 않고 조의문과 조화를 전달로 대신하기로 했다. 최근 남북, 북미 정세가 이같은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는 12일 오후 "이희호 여사 서거와 관련해 북측은 오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 명의의 조의문과 조화를 전달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왔다"며 북한이 이날 오후 5시 판문점 북측 지역인 통일각에서 만날 것을 제의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이를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정부 측에서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호 통일부 차관이, 장례위원회를 대표해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 등이 판문점에 나가 조의문과 조화를 받을 예정이다.

당초 이희호 이사장 서거 직후 북한이 고위급 조문단을 내려보내지 않겠냐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2011년 김정일 북한 국무위원장이 사망했을 때 이희호 이사장이 직접 북한을 찾아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난 적도 있는 만큼, 북한에서 책임있는 인사가 조문을 내려올 것으로 예상됐다. 

아울러 북한이 고위급 인사가 이끄는 조문단을 파견하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길어지고 있는 남북관계 교착이 해소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한몫했다. 이날 오전까지도 김연철 통일부장관은 북한 조문단 파견 여부를 묻는 기자들 질문에 "조금만 기다려달라"며 마지막까지 북한 설득 작업에 공을 들이고 있는 듯한 뉘앙스를 보였다.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1주년이 되는 이날,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부터 "아름다운 친서를 받았다"고 밝힌 점도 국면 전환에 대한 기대치를 높였다.

하지만 북한은 조문단 대신 조의문과 조화 전달을 선택했다. 북한이 이러한 방식의 조의를 표하게 된 배경에는 현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가 일정 부분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비핵화 협상을 둘러싸고 미국에 "새로운 접근법"을 요구하는 한편 문재인 정부에 미국 추종에서 벗어나라고 주문해 온 북한으로서는 현 정세에서 유화적 제스추어로 비쳐질 수 있는 조문단 파견이 부담스러웠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월에 제안한 남북 정상회담을 비롯해 남한의 대북 인도적 지원, 아프리카 돼지열병 문제와 관련한 남한의 협력 제의에도 이렇다 할 응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조문단이 내려와 조문만 하고 바로 북으로 복귀한다면 이는 남북관계의 이상 신호로 비춰질 수 있다. 따라서 조문단과 남한 정부 인사와 만나는 자리가 마련되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지난 2월 열렸던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남한이 제안한 어떤 것에도 응답하고 있지 않은 북한이 갑자기 현안을 이야기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병철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남측의 역할에 기대가 없다는 점, 트럼프 대통령 앞으로 김정은 위원장이 친서를 발송했다는 점 등으로 미뤄볼 때 대미 관계 개선에 집중하겠다는 의사를 표출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북한이 현재 처한 상황을 고려한 대외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런 상황에서 돌발 변수인 '이희호 이사장 서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 교수는 "조문단이 남한에 내려갔을 경우 여러 가지 해석이 난무할 수 있다. 그렇게 될 경우 향후 북한 내부에서 전술 및 전략 수립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또 "문재인 대통령이 현재 해외 순방 중이라는 점도 북한의 조문단 파견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면서 조문단을 파견하더라도 이들이 남한과 성과있는 협의를 하고 돌아오기 힘든 환경적 요인도 북한의 판단에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다만 조의문과 조화를 전달할 인사로 김 위원장의 동생이자 최측근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선택하는 등 최대한 예를 갖춤으로써 남한 여론 관리에도 신경 쓴 듯한 인상을 남겼다. 일부 언론을 통해 '근신설'이 나돌았던 김여정 부부장은 지난 4일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대집단체조를 관람하는 장면이 포착된 데 이어 이번엔 조의문과 조화를 전달하며 김정은 위원장의 '메신저'로서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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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기자 jh1128@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