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문 30년, 100만 홍콩인은 왜 거리에 나섰나?
범죄인인도법 개정안에 홍콩 시민 반중감정 폭발
2019.06.11 19:18:09
천안문 30년, 100만 홍콩인은 왜 거리에 나섰나?

천안문 사태가 터진 지 30년이 되는 올해 홍콩에서 '홍콩판 천안문 사태'로 격화될 가능성이 있는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벌이지고 있다. 인구 700만 명의 홍콩에서 지난 9일 주최측 추산 100만 명 넘는 시민이 홍콩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법안에 반대하는 시위에 나섰다. 그뿐만이 아니라 홍콩의 기업과 상점 수백 곳도 이 법안에 반대하기 위해 문을 닫기로 하는 등 홍콩 각계의 조직적인 반발이 거세게 일고 있다.

문제가 된 법안은 '범죄인인도법 개정안'이다. 시민들이 격렬하게 반대하는 개정안은 중국을 포함해 대만, 마카오 등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서 특정 범죄인을 인도할 경우 허용할 수 있도록 하는 독소조항이 포함됐다. 홍콩 시민들은 중국 정부가 반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데 이 법을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며 저지에 나선 것이다. 


▲ 지난 9일 홍콩 시민 100만 여명이 범죄인인도법 개정안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


홍콩 사회 전반, 12일 개정안 저지 위해 총력투쟁 예고


현재 홍콩 정부의 수반은 '역대급 친중인사'로 불리는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이다. 그는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통해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하겠다"고 유화 제스처를 보이면서도 법안 추진은 강행하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혔다. 또 홍콩 경찰은 불법 집회를 연 혐의로 19명을 체포했으며, 충돌에 가담한 358명이 더 체포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개정안은 친중인사들이 장악한 홍콩의 입법회에서 12일 처리될 전망이다. 홍콩의 의회인 입법회 의석은 총 70석으로 지역구 의석 35석, 직능대표 의석 35석으로 구성된다. 직능대표 의석은 친중파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지역구 의석도 친중파가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9일 시위를 주도한 홍콩 재야단체연합 '민간인권전선'은 이날도 시위를 이어가겠다고 밝혔고, 홍콩 노동운동단체들과 환경단체, 예술계, 사회복지사총공회 등도 일일 파업으로 저지 시위에 동참하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홍콩이공대학 학생회 등 학생들도 동맹휴학에 나서는 등 홍콩 사회 전반이 총력 저지투쟁을 예고한 상태다.

이번 사태는 미국과 중국의 신경전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과의 무역분쟁을 패권전쟁 양상으로 끌어가고 있는 미국은 대만 문제에 이어 홍콩 사태에도 개입하고 나섰다.

미국은 최근 국방부 공식 문서에 중국이 수복하지 못한 영토로 규정하고 있는 대만을 중국과 별개의 국가로 언급한 데 이어 이번에는 국무부가 홍콩 사태에 시민들을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다.

모건 오테이거스 국무부 대변인은 10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미국 정부는 홍콩 정부가 제안한 개정안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면서 "개정안이 홍콩의 사업 환경을 해칠 수 있고 홍콩에 거주하거나 홍콩을 방문하는 우리 국민들에게 중국의 변덕스러운 사법제도를 강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지난달 홍콩의 민주화 지도자인 마틴 리 전 민주당 창당 주석을 만나 이번 법안이 "홍콩의 법치주의를 위협한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개정안이 강행 처리될 경우 홍콩 사회의 분노가 폭발하며 유혈사태가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큰 배경에는 그동안 홍콩 시민들이 억눌러온 '반중 감정'이 깔려 있다.

지난 1997년 영국이 홍콩을 중국에 반환하면서 중국 정부가 서구식 민주주의 체제가 익숙해진 홍콩의 자치권을 50년 동안 보장하기로 약속했지만, 홍콩 시민들 사이에서는 중국 정부의 간섭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홍콩 시민의 불만은 정치체제 간섭만이 아니다. 중국 부자들의 '검은돈'이 '조세회피처'로 여겨지는 홍콩으로 대거 유입되면서 홍콩의 집값 등 자산 폭등을 주도했다는 경제적 피해의식도 상당하다.

홍콩의 주택가격은 1997년 홍콩 주권반환 이후 중국 본토의 막대한 자금이 홍콩에 유입되면서 2003년 이후 400% 넘게 상승하면서 아파트 가격이 3.3㎡(평)당 1억 원을 훌쩍 넘어섰다. 홍콩 직장인의 중위소득이 월 240만 원 정도인데 20평짜리 아파트가 20억 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일자리와 임금 문제도 있다.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1997년 이후 홍콩에서 영주권을 얻은 중국인은 70만 명에 육박한다. 홍콩의 현재 인구 10% 정도가 본토 출신 중국인으로 이들이 저임금 일자리에 몰려들면서 홍콩의 전반적인 임금 수준을 낮추고 있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홍콩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5만6000 달러에 달하지만, 시간당 최저임금은 34.5홍콩달러(약 5200원)에 불과하다.

1인당 GDP 3만 달러 시대에 진입한 한국의 올해 최저임금이 8350원이라는 것과 비교할 때 홍콩 서민들이 느끼는 임금 수준에 대한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또한 중국 본토와 연줄이 있는 중국 본토 출신의 고급인력들은 중국과 관련된 분야에서는 고임금 일자리마저 잠식하고 있다. 이에 따라 홍콩 시민들은 중국 본토에 대해 쌓여온 불만이 범죄인인도법 개정안으로 폭발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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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선 기자 editor2@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2001년 입사해 주로 경제와 국제 분야를 넘나들며 일해왔습니다. 현재 기획1팀장을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