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없는 노동의 시대
[민미연 포럼] '사회보험 가입 국가책임제도'를 제안한다
노동자 없는 노동의 시대
AI, 4차산업혁명, 플랫폼노동 등 요즘 자주 접하는 용어들이다. 거창한 단어들이지만, 다수의 국민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 같은 변화로 '나의 생계가 어떻게 달라지냐?' 하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삶의 패턴은 바뀌었다. 오픈마켓에서 주문을 하고, 택배로 물건을 받으며, 어지간한 맛집은 배달앱으로 통한다. 식당에 가면 일명 '키오스크'라 불리는 무인주문대에 주문을 하고 마트에서도 직접 무인계산대에 바코드를 찍어 가며 계산한다. 숙박은 '에어비앤비'에서, 차는 '우버'나 '타다'를 이용한다. 자가운전을 한다면, '쏘카'를 이용하면 된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어지간한 법률상담도 가능하다. 기사를 쓰는 일도 기자가 아닌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날이 멀지않았다. 조만간 수많은 부품이 들어가는 내연기관차는 훨씬 간단한 전기차로 '주류'가 바뀔 것이고, 연료주입을 위해 주유소가 아닌 충전기가 동원될 것이다. 정기적인 노선을 운행하는 버스와 트럭 등 어지간한 운전은 자율주행차가 대신할 것이다.

중요한 건 일자리 변화 대응

이 모든 변화가 초래하는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일자리'다. 이미 수많은 이들이 이 같은 변화 속에서 일자리를 잃고 있으며, 누군가에게 고용되기보다는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또 플랫폼노동이라는 이름으로 삶을 영위하는 추세가 강화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의 노동을 지켜주고 삶을 보장하는 일에 대한 책임의 상당 부분은 '고용주'가 부담하는 시스템이다. 더불어 노동생애와 노후세대를 책임지는 중심적 복지체제는 고용보험, 산재보험, 국민연금 등으로 안정적 보장받는다. 오랫동안 누군가에게 고용된 전통적 노동자에게 가장 유리한 제도다. 그 외 주휴수당, 퇴직금(퇴직연금), 연차휴가, 각종 휴직 등 일하는 사람의 더 나은 삶을 보장하는 각종 제도들 역시 누군가에게 명백히 고용된 '노동자'만 누릴 수 있는 제도들이다. 하다못해 각종 조세감면제도(소득공제, 세액공제) 역시 '근로소득'에 대해서만 혜택이 집중된다.

자유로운 노동을 위한 보장

중국집에 취업한 배달노동자나 '배달의민족' 앱을 통해 주문을 받는 배달노동자나 하는 일에는 차이가 없다. 웹에이전시의 디자이너나 '크몽'에서 일감을 받는 웹디자이너나 노동의 가치가 다르지 않다. 자신의 지식과 창조성이 수입의 원천인 유튜버는 이미 '주류정보제공자'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노동의 주류는 전자에서 후자로, 점점 그 형태가 변화하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 필요한 과제는 사회보험 제도의 변화와 재설계이다.

재설계는 너무나 큰 과제이기에 오늘 언급하고자 하는 내용은 직접적인 '고용'은 이뤄지지 않지만 '나홀로 노동'으로 삶을 영위하는 이들의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의 사용자 역할을 국가가 떠안자는 제안이다.

ⓒ연합뉴스


사회보험 국가책임제


솔직히 따져보자. 300만 원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 부담하는 국민연금 보험료는 13만5000원이고, 200만 원 간신히 버는 플랫폼 노동자의 국민연금 보험료는 18만 원이다. 정당한가? 일부에서는 퍼주기라고 비난할 수 있겠지만, 이미 농민과 어민 등은 그렇게 하고 있다.(국민연금, 건강보험에 한해) 이들보다 처지가 나은, '고용'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소규모 사업장에 일정금액(210만 원)까지 급여소득자에 대해서는 '두루누리사회보험 지원제도'로 국가가 지원하고 있다.

일정 소득 기준액까지는 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매칭펀드 형식으로 개인이 오롯이 부담하는 사회보험료를 국가가 책임지자. 예를 들어 소득활동을 하는 신청자에게 월 174만5000원(2019년도 최저임금)까지 사회보험료 절반을 국가가 지급하는 것이다. 그럼 비용은 얼마나 소요될까?

약 300만 명 정도의 일명 프리랜서들에게 풀타임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까지 국가가 사회보험료를 지원한다면(산재도 50%), 현재 사회보험료 요율을 고려할 때 대략 연간 6조 원 정도로 추산된다. 물론 자기부담 때문에 약 175만 원의 소득이 아닌, 그 보다 낮은 기준으로 신청하는 이들도 상당할 테니 예상되는 예산은 6조 원보다 적을 것이다.

현재 정부의 정책기조는 예산을 투입해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리고, 조직노동은 '노동자'의 권리 향상에 오롯이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솔직히 생각해보자. 자신을 책임질 고용주가 있으면, 혜택이 크면 클수록 '노동자의 권리'는 약화된다. 누군가에게 얽매이지 않더라도 내 능력에 맞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면 노동하는 사람의 권리도 그만큼 커진다.

'근로자성'에 얽매이지 말자

사실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산재보험 가입, 자영업자에 대한 고용보험 가입 등 사회보험 제도의 적용 확대는 조금씩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요구가 있고 논란이 되는 부분에 대해 찔끔찔끔 확대되는 방식이며, 핵심은 '근로자의 지위를 갖고 있느냐 아니냐'의 성격 논쟁으로 이어진다. 이제 이러한 틀을 과감히 넘어 전면적인 정책 변화를 추진하자. 어차피 변화는 필연이고 소중한 노동을 제공하는 이들에 대해 최소한의 안전판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는 '변화에 대응'하는 선제적 행동이기도 하다,

물론 도덕적 해이의 우려도 존재할 수 있다. 그렇기에 '사회보험 가입 국가책임제도'와 관련해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선 개별 제도를 포괄하는 통일적 소득 기준 적용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지금은 국민연금은 지역가입자로 상당한 소득을 신고하면서 건강보험은 피부양자로 한 푼도 안 낸다거나 하는 식의 취사선택이 가능하다. 그렇기에 본 제도를 적용함에 있어 각종 사회보험 제도에 적용되는 소득은 일괄적으로 통일해야 할 것이다. 고용보험과 국민연금에 150만 원 소득을 신고한다면 건강보험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얘기다. 이를 통해 일명 '무임승차' 문제도 해소하고 과세범위를 확대하면서 '지하경제'도 양성화하는 나름의 성과도 가능하리라 예상된다. 물론 시행 과정에서 생각지 못한 편법으로 혜택을 누리는 이들도 존재할 것이다. 그럼에도 큰 변화에 흐름에 부응하면서 국민의 기본적 삶의 보장을 위해선 사회보험가입 국가책임제가 필요하다.

나아가 노동시장의 현실에 맞게 사회보험제도 중 연금의 경우는 국민연금의 비중을 낮추고 기초연금의 비중을 높이는 개혁이 필요하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전통적인 노동자만 이득을 보고 후세대 부담은 커지기 때문이다. 고용주도 마찬가지다. 이윤 창출에 연동되는 조세와 달리 국민연금 보험료는 '고용'에 직접 연동된다. 고용 규모에 따라 부담이 더 커지니 오히려 고용을 회피하게 된다. 사실 현 문재인 정부가 생각하는 국민연금 개혁의 방향은 시대변화나 후세대 부담 등 여러 측면에 있어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발상의 전환으로 우리 삶에 유용한 노동을 제공하는 수많은 '고용주 없는 노동'에 대해 최소한의 보장을 제공하자.

그 시작은 가칭 '사회보험 가입 국가책임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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