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 북미 공동성명 1년에 부쳐
[정욱식 칼럼]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 1년이 지났지만…
6.12 북미 공동성명 1년에 부쳐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작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 이후 1년간을 복기하면서 드는 탄식어린 의문이다.

북미 공동성명은 1항에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2항에 "한반도의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 3항에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차례로 담았다. 이러한 합의 사항 배치는 1990년대 초반 북미 협상이 본격화된 이후 처음이었다. 그래서 북미 양국이 한반도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고 그 뿌리를 캐내겠다는 의미를 품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성공의 저주'를 잉태하고 말았다. 미국 주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속고 있다'는 프레임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약속한 종전선언도 깔아뭉갰고, CVID보다 훨씬 일방적인 FFVD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 이를 비핵화의 원칙으로 밀어붙였다. 대북 제재 완화와 해제는 북미 공동성명의 '예외'라는 입장도 관철시켰다.

트럼프도 뒷걸음쳤다. 북한이 핵실험과 장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중단을 약속하자 '급한 불'은 껐다고 여겼다. 또한 김정은이 경제건설에 의욕을 불태울수록 이를 약점으로 여기곤 제재에 더욱 집착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장삿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북 협상에는 느긋한 태도로 돌아서곤, 중국과의 무역전쟁, 한국과 일본을 상대로 한 방위비 분담금 인상 및 무기 판매 증대에 초점을 맞췄다.

북한도 1차 북미 정상회담 성공에 따른 도취감에 취한 나머지 시야는 흐려지고 기존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북한은 최고 지도자의 결정이 곧 법처럼 간주되는 체제이다. 그래서 김정은은 트럼프와의 합의가 잘 지켜지리라 믿었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과는 달리 다원주의 체제이자 견제와 균형을 국정 원리로 삼고 있는 나라이다. 그래서 의회와 여론의 반응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한반도의 현상 변경을 향한 '작용'이 일어나면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세력의 '반작용'도 커진다는 점은 과거에도 수차례 확인된 바였다. 그런데 북한은 이러한 점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북한의 자아도취는 관성으로 이어졌다. 1차 북미정상회담을 전후해 '단계적·동시적 조처'를 숱하게 주장했는데, 이는 그 의도와 관계없이 미국의 회의론자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말았다. 미국 주류는 "김정은은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을 신념처럼 받들어왔다. 이런 그들에게 북한의 '단계적·동시적 조처' 주장은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는 시늉만 하고 영변 핵시설 폐기와 같은 일부 양보만 하고 결국 핵보유국 지위를 노리는 것"이라는 신념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었다. 이들에게 '단계적'이라는 표현은 북한의 시간끌기로 비춰졌고 그래서 1차 북미 정상회담 및 그 이후 과정에 대한 혹평으로 이어졌다.

▲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첫 북미 정상회담을 가진 뒤 공동선언에 서명하고 이를 교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물론 이러한 진단에 북한은 억울할 수 있다. 단번에 비핵화를 할 수 없고 미국의 상응조치도 마땅히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단계적·동시적 조처'는 상식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북한은 6.12 정상회담을 전후해 핵실험 중단 및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중단 및 엔진 시험장 해체, 미군 유해 송환 등과 같은 선제적인 양보조치들도 취했다.

하지만 지난 25년 동안 '북한의 도발→북미 협상→미국의 양보→북한의 재도발'이라는 패턴에 당했다고 여겨온 미국의 주류는 북한의 주장과 초기 조치들을 또 하나의 속임수로 여겼다. 특히 북한이 핵 신고와 검증, 그리고 핵무기 및 핵물질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언약조차 하지 않은 것을 두고 집중적으로 문제를 삼았다.

1차 북미 정상회담을 전후한 문재인 정부의 선의와 노력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2018년 대전환은 실력보다는 운이 많이 따랐다고 볼 수 있는데, 정부가 이를 실력으로 자만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트럼프가 한미군사훈련 '중단'을 약속했던 만큼 문재인 정부는 이를 기회로 삼았어야 했다. 하지만 중단이 아니라 '축소'를 선택하고 말았다. 4.27 판문점 선언에서 "단계적 군축 추진"에 합의했는데, 그 직후 역대급 군비증강 계획을 내놓은 것도 아쉽다. 대북 제재 문제와 관련해 미국에 끌려 다닌 것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도 비핵화를 둘러싼 북미간의 동상이몽이 커지고 있었는데, 문재인 정부는 '같다'고 우기면서 한국식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

결국 남북미 3자의 이러한 문제점들이 부정적인 화학작용을 일으키면서 2차 북미정상회담은 '하노이 노딜'로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북미 협상은 기약 없이 표류하고 있고 남북관계도 그 여파에 시달리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미중간의 무역전쟁이 점입가경으로 치달으면서 불확실성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졸저 <비핵화의 최후>에 담았던 것처럼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에 대한 나의 전망은 어둡다. 하지만 어둠을 뚫고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운명적 역할은 북한과 미국으로 하여금 역지사지의 태도를 갖게 하는 것이다.

미국을 상대로는 '트럼프가 김정은과 사랑에 빠졌다면서 제재를 계속 가하는 것은 데이트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납득시켜야 한다. 깨지기 쉬운 비핵화 협상에 이것저것 섞으면 안 된다는 점도 분명히 해야 한다. 북한을 상대로는 '비핵화의 핵심인 핵물질과 핵무기 폐기 방안을 밝히지 않으면 트럼프가 미국 주류의 저항을 이겨낼 수 없다'는 점을 납득시켜야 한다. 그리고 이것들을 아우르면서 현실가능하고 미래지향적인 '한국식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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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