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불가침'이 돼 버린 '차량공유'란 혁신적 헛소리
[기자의 눈] '타다'는 '차량공유'가 아니라 '노동대여'
2019.06.07 17:58:54
'신성불가침'이 돼 버린 '차량공유'란 혁신적 헛소리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 글에서는 타다와 택시의 상생 방안 같은 정책 이야기와 그 해결책을 다루는 게 아니다. 

우버는 혁신일까? 

미국에서 우버를 이용해 볼 기회가 있었다. 몇해 전 뉴욕에 방문했을 때 지인이 스마트폰 앱으로 우버 기사를 호출하면서 '어쩜, 너무 편리하지 않니?'라고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이런 건 솔직히 감흥이 없다. '이게 왜?'

택시를 스마트폰으로 호출하는 서비스야, 한국에선 이미 일상이었다. 물가를 감안해도 우버 요금은 한국의 택시 서비스와 큰 차이가 없었다. 이게 '혁신'으로 불린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미국, 특히 뉴욕의 택시는 악명높다. 비싼 요금에 불친절하고 교통난은 최악에 '콜'을 부를 경우 요금이 천정부지로 솟는다. 우버는 이런 불편을 해결해 줬다. 

한국 여행객에게 동남아시아는 과거 '바가지 택시'의 대명사로 악명높았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갈 때 요금 폭탄을 각오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 일부 택시 기사는 여행자가 지리를 모른다는 약점을 이용해 가까운 목적지를 빙 둘러 간다. 심지어 택시 요금이란 건 '흥정'이 기본이다. '택시 흥정하는 법' 같은 노하우는 인터넷에 널려 있다. 택시와 '유사 택시'의 경계도 희미했다. 그 틈에서 '그랩'이나 '클룩'이 나왔다. 이게 대단한 돌풍을 일으킨 이유는 '정찰제', 그리고 '부르면 온다'는 믿음을 사람들에게 줘서다. 친절함과 편리함이 없던 곳에 친절함과 편리함을 팔면, 대박이 날 수밖에. 

우버가 '앱'을 충격적으로 잘 만들어서, 혹은 자동차를 날아다니게 하거나 순간이동을 가능케 해서 성공한 건 아니다. 척박한 시장에서 약간의 서비스를 가미한 것이 성공으로 이어졌다. 이런 경우는 시장이 척박할수록(기저효과) 성공의 규모도 효능감도 커진다. 우버와 그랩은 미국과 동남아시아였기 때문에 성공한 사업 모델이 됐다. 

택시 시스템이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이나 일본에서 우버와 그랩이 자생적으로 탄생하지 못했던 이유는 별 게 아니다. 그다지 필요성을 못 느꼈을 뿐이었다. 이를테면 구글이 한국 시장에서 고전하는 이유는 네이버라는, 특이한 방식으로 강력한 생태계를 구축한 다른 검색 툴이 있어서였다. 그렇다고 구글이 '네이버를 위한 한국의 법(규제) 때문에 우리의 혁신 서비스가 한국에서 죽어간다'고 울지 않는다. 그냥 한국 사람들에겐 구글이 필요하단 절박감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적었을 뿐이었다. 

차량 하나 소유하지 않고 앱 하나 두고 기사를 관리하며 중간에 이익을 떼 가는 것이 하는 게 전부인 사업으로 돈을 벌고, 그렇게 축적된 자본을 바탕으로 첨단 산업에 기웃거리고 기술 혁신에 투자하는 것은 전형적인 미국의 기업 성장 스토리다. 이 전형적인 '아메리칸 드림'이 갑자기 '혁신'으로 둔갑해 한국에 수입되더니, 최근에는 우버나 타다가 무슨 '4차산업혁명'의 상징처럼 돼 버렸다. 

차량공유서비스 타다는, 사실 차량대여서비스에 더 가까워보인다. 유사한 사업이 과거에 있었다. '깨비 책방'이나 '비디오 대여점' 같은 것들인데, 비디오 대여점은 나중에 배달 서비스도 했다. 이게 사라진 이유는 '불친절'이 아니라 인터넷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무리봐도 우버의 '업적(?)'은 인터넷 개발이나 자동차 발명같은 급은 아닌 듯 하다. 

우버나 타다를 차량 공유 서비스라고 말하는 것도 어패가 있지만, 그렇다고 '차량 대여 서비스'라고 말하는 것도 본질을 가린다. '사람 대여 서비스', '노동 대여 서비스'로 부르면 어떨까. 자율주행차가 활주하는 세상이 아닌 이상 차량 대여 서비스는 모두 사람의 섬세한 노동으로 이뤄진다. 운전 서비스를 차량 서비스로 부르는 사이에 우린 사람을 지워버린다.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러 '쿠폰'이라는 이름으로 소비자들에게 현금을 마구 뿌려대는 '배달앱' 역시 마찬가지다. 기술 혁신으로 기업이 유지되는 게 아니라 사람의 노동으로 기업이 유지되고 또 돈을 번다. 

그런데 우버의 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니라고 한다. 미국 법원은 우버 기사가 노동자가 아니라고 결론내렸다. 이른바 '특수고용직'인데,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와 비슷한 구조의 고용 형태다. 

택시나 '유사 택시'와 같은 운송업은 규모가 대충 정해져 있다. 차량과 운전자를 함께 대여해 사용하는 '모빌리티'가 아무리 늘더라도 한 달에 택시를 열 번 타는 사람이 갑자기 스무번 탈 가능성은 적고, 안 타던 사람들이 더 많이 타더라도 한계는 있다. 서울에 택시가 7만 대다. 많다고 한다. 타다와 같은 서비스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건 서울에 '유사 택시' 10만 대, 20만 대를 만드는 게 아닐 것이다. 서울 택시 7만 대가 보유한 승객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우버나 리프트 역시 무리하게 차량 수를 늘려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유사 택시'가 늘면 1대 당 승객 수는 줄어들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기사들의 소득도 줄어들고, 고통스러운 노동 환경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서 승자는 단 하나, 대여료, 수수료 받아 먹는 플랫폼 오너다.  

자동차 한대도 소유하지 않는 '모빌리티 기업'은 기업주의 입장에선 '혁신'이지만 노동자 입장에선 '재앙'이다. '재앙'을 맞이하게 된 노동자에게 '혁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21세기 '문맹' 취급을 하면 그들이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이런 '억지'가 한국에서도 펼쳐지고 있다. 혁신의 신화화다. 배달 앱 서비스나 타다 서비스의 본질과 관련한 문제를 제기하면, 신성불가침의 혁신에 저항하는 걸로 간주되며 곧바로 '러다이트' 취급을 받는다. 어떤 신문은 '타다 vs. 택시' 논란을 두고 '마차 눈치 보며 자동차 길 막으면 마차 좋은 세상이 오나'라고 사설에 썼다. 자동차가 등장했는데 마부들이 데모한다는 비유는 단골이다. (그런데, 타다 이재웅 씨가 자동차를 발명했나?) 

영국의 '붉은 깃발법' 비유도 재미있다. 자동차를 발명한 나라인 영국이 마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자동차가 마차를 앞지르지 못하도록 붉은 깃발을 흔들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사실 잘못된 비유인데, 런던에 마부를 모아 수수료를 떼먹는 마차회사가 등장했다는 게 더 잘 맞는 비유다. 다른점이 있다면 마차회사 마부들은 승객에게 '특별히 원하시는 유행가가 있으면 불러드리겠습니다'라고 한다는 점 정도다. 

자율주행차라는 헛된 꿈, 드론 피자 배달 같은 괴기스러운 단어 배열이 무슨 '혁신'으로 포장되는 것도 솔직하지 못하다. 자율주행차의 개발이나 드론의 개발은 '혁신'일 수 있겠지만, 그것이 서울 시내를 마음껏 다닐 수 있으려면 서울 시내의 도로와 골목길을 재배열하고, 하늘길의 새로운 구획과 규범을 창조해야 할 것이다. 이건 '기술 혁신'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을 만져야 한다. 사회 시스템을 만지려면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하늘에 드론 수만대가 떠다니는 게 가능할까? 저 위 몇대에나 폭탄이 실려 있을까 하는 걱정부터 든다. 이런 세상이 온다면 어떤 SF영화에서처럼 분명 기업이 국가를 인수하는 시대가 도래해야 가능할 것이다. 아니면 독재 체제로 가자고 투표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을 멸시하는 게 '선'이 될 수 있고, 노동을 마음껏 재배열 할 수 있으니까. 

지금 논의되는 혁신은 60년대 '미래 시대 예측' 삽화에나 나오는 '로봇 청소기'나 '우주 여행' 수준도 못 된다. 추상적 합의로 세운 국가 시스템을 뒤틀고 사회적 행위를 재배열하는 걸 전제로 하는 일들을 '자동차 발명' 같은 수준으로 논의한다. 그러면서 대중을 '혁신'에 반대하는 '멍청이'로 취급한다. 기술적 상상력은 드높되, 인문학적 상상력은 빈약하다.   

이재웅 씨 같은 경우는 자본가로서 자신의 롤에 충실한 사람이다. 인류 최초로 자동차를 만든 사람이 아니라 인류 최초로 렌트카 사업을 구상한 사람, 혹은 인류 최초로 비디오 테이프를 만든 사람이 아니라 인류 최초로 비디오 대여점을 연 사람에 비견될만 하다. 딱 거기까지다. 이재웅 씨를 옹호하는 분들은 돈벌이 모델의 혁신을 21세기 인류의 길처럼 포장만 안 했으면 한다. '아메리칸 드림'의 흔한 창업 성공 스토리가 한국에서 21세기 인류 혁신의 모델로 간주되고 있는 건 코미디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이재웅 씨에게 좋은 말을 했다. 이 당연한 말 마저 누군가 '고리타분하다'고 느낀다면, 할 말이 없다. 

"혁신의 빛 반대편에 생긴 그늘을 함께 살피는 것이 혁신에 대한 지원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다... 혁신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회 전체의 후생을 높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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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기자 ilys123@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