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윤평중 칼럼, 민족주의 이론 오도하고 있다
[민미연 포럼] '종족적 민족주의'는 감성적이고 편협한가?
<조선> 윤평중 칼럼, 민족주의 이론 오도하고 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지난 4월 19일 자 <조선일보> 칼럼 '감성적 민족주의가 국가대전략을 해친다'에서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과 반일 정책을 이끄는 집단 사고를 "편협한 종족적 민족주의"라고 규정하며, 그것이 "문 정부의 대북 정책과 한·일 관계를 그르치는 근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김정은이 "국가의 근본 이익인 핵무장력"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는데도 불구하고,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김정은의 의지를 높이 평가하면서 남북 정상회담을 요청했다며 북한 핵 문제에서 "감성적 종족 민족주의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존립 근거를 위협"하며 "민족의 미명으로 성숙한 민주국가를 흔들고 시민적 자유와 풍요를 위태롭게 한다"고 주장했다.

또 한·일 관계 경색 책임이 일본에게도 있다면서도 "친일 적폐 청산과 역사 바로 세우기를 국가대전략보다 중시하는 문재인 정부의 강경 민족주의가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것은 "경제와 북핵 문제에서 한·일 상호 협력이 한국의 국가 전략에 갖는 사활적 중요성을 감안하면 치명적 자해 행위가 아닐 수 없다"고 개탄한다. 그리고 이런 사고의 바탕에 있는 것이 "편협한 종족적 민족주의"라는 것이다.

이 글에서 윤 교수는 종족적 민족주의에 "감성적", "강경", "편협한"과 같은 수사를 동원하여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여기서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이나 대일 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다. 다만 종족적 민족주의가 윤평중 교수가 주장하는 것과는 다르며 윤 교수가 의도적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민족주의 이론을 오도(誤導)하고 있다는 사실만을 지적하려 한다.

오늘 날 서양인들은 보통 민족주의를 시민적 민족주의와 종족적 민족주의로 둘로 구분한다. 민족을 이렇게 두 개의 유형으로 처음 분류한 것은 독일 역사가인 프리드리히 마이네케(1862~1954)이다. 그는 민족을 문화적 민족과 정치적 민족의 두 유형으로 구분했는데, 문화적 민족은 기본적으로 함께 경험한 어떤 문화적 유산에 의존하는 것으로 독일형이며 정치적 민족은 공통의 정치사와 헌법의 통합적인 힘에 의존하는 것으로 프랑스·영국 형이다. 이것은 이들 나라의 서로 다른 역사적 경험에서 끌어낸 것으로 문화적 민족으로서의 독일의 문화적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치시대를 겪으며 문화적 민족과 그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두 유형에 대한 윤리적인 판단이 바뀌었는데, 그것을 본격적으로 수행한 사람이 미국 역사학자인 한스 콘이다. 그는 1944년에 낸 <민족주의의 이념>이란 책으로 그 이후 수십 년 동안 민족주의 이론의 최고 귄위자로 자리 잡은 사람이다.

콘은 마이네케의 정치적 민족주의를 시민적 민족주의로, 문화적 민족주의를 종족적 민족주의로 바꿔 불렀고 전자는 서방 세계에 후자는 중·동부 유럽과 아시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에 따르면 서방에 해당하는 잉글랜드, 프랑스, 네덜란드, 스위스, 미국은 그 발전 과정에서 매우 운이 좋은 시기에 민족주의의 흥기를 경험했다. 즉 응집력이 있는 영토, 강한 중산계급을 이미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민족주의는 주로 정치적·경제적 형태를 취했으며 민주주의와 결합할 수 있었다. 또 계몽사상의 합리주의를 받아들여 낙관주의적이고 다원주의적이며 코스모폴리타니즘적이 될 수 있었다.

반면 독일과 러시아 같은 중·동부 유럽의 나라들이나 아시아 국가들에는 민족주의가 뒤늦게 도착했는데, 이 지역들에서는 권위주의 체제가 지배적이었고 또 늦은 산업화 때문에 중산층은 발전하지 못했다. 따라서 흥기(興起)하는 민족주의는 정치적 과정까지 나아갈 수 없었고, 그 표현을 문화적 영역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독일인들이 언어와 문화 민족주의를 강조한 것은 그 이유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비(非)서방 민족주의는 혈연이나 언어, 문화, 역사 등을 포함하는 종족성의 개념 위에 세워짐으로써 계몽사상의 합리주의를 거부하고 권위주의를 받아들이고 폐쇄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콘의 이런 분류는 그 후 민족주의 연구자들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쳐 약간의 변형은 있더라도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따르고 있다. 그 결과 시민적 민족주의는 이성·합리성·개인의 자유·민주주의·평등·개방성·코스모폴리타니즘과 연결시키고, 종족적 민족주의는 감정·권위주의· 공동체주의·외부인에 대한 배타성과 편협함·야만성·폐쇄성·홀로코스트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본다.

그래서 서방에 속하는 정치인이나 지식인들은 오늘날에도 이런 논리를, 민족주의 일반을 비판하면서도, 서방 민족주의의 우월성을 주장하고 비서방 민족주의를 비판하거나 비난하는데 이용한다. 그리고 시민적 민족주의의 특징으로 프랑스인 에르네스트 르낭이 19세기 말에 <민족이란 무엇인가>라는 팸플릿에 쓴 '민족은 매일매일의 국민 투표'라는 경구를 자주 인용한다. 민족이란 시민들이 매일매일하는 자발적인 정치적 합의에 따라 형성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런 뜻으로 보면 민족은 문화적인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정치적인 현상이다. 특히 미국인들이 그런 경향이 있는데 미국은 이민으로 구성된 국가로서 정치적 합의에 따른 헌법에 의존하여 시민적 민족을 구성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면 시민적 민족주의와 종족적 민족주의는 이렇게 서로 완전히 분리될 수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시민적 민족주의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의 경우를 보자. 18세기 말 프랑스혁명 당시 혁명가들은 민족의 형성을 개인들의 정치적 합의에 따른 것처럼 주장했으나 새로운 프랑스민족의 경계선은 구체제 프랑스 왕국의 국경에서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다른 문화와 전통을 가진 이웃 나라의 개인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 프랑스 민족도 기존 프랑스 왕국의 종족성의 유산 위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이다. 또 프랑스 민족에 포함되지 않으려는 개인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민족의 불가분성을 내세우며 그 분리를 금지시켰다. 민족이 개인의 자유로운 합의에 따른 존재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면 프랑스의 시민적 민족주의가 더 윤리적인가? 그렇지도 않다. 프랑스인들은 프랑스 민족이 정치적 합의에 따른 시민적 민족이라는 주장 아래 동일한 민족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고 이 점에서 매우 엄격하여 관용이 없다. 이는 언어나 문화에서 이질적인 다른 종족적 요소들을 절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며 종족적 소수파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1990년대 프랑스 사회에서 시끄러웠던 히잡 사건에서 잘 볼 수 있다. 말로는 프랑스 공화적 정체성의 핵심이 세속성이므로 이슬람교의 상징인 히잡을 쓰고 학교에 등교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당시 시락 대통령도 세속성을 '우리의 민족적 응집성의 기초'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수백만 명에 달하는 프랑스 내 무슬림의 종교적 표현의 자유를 거부하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최근 프랑스 경찰은 한 해수욕장에서 히잡을 쓴 피서객을 체포하여 벌금을 물린 일도 있다. 이 점에서 프랑스의 시민적 민족주의는 매우 옹졸하고 편협하다.

또 미국인들은 자기네 시민적 민족주의를 '애국주의'라고 부르며 그것은 종족적 민족주의와는 아주 다른, 절제를 잃지 않는 합리적인 이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 9·11 테러 이후 미국인들이 흥분 속에 애국주의를 부르짖고 복수를 외치며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까. 그것은 감정적이고 편협한 태도가 아닌가. 실제로 종족적 민족주의와 시민적 민족주의는 뒤섞여 잘 구분되지 않는다. 따라서 민족주의 일반에 대한 윤리적인 비판은 다른 문제이지만 '종족적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한국 민족주의'를 비아냥대는 행위는 매우 잘못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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