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OSHA 전 청장 "사업주는 노동자에 안전 제공 의무 있다"
방한 마이클스 OSHA 전 청장 "노동환경, 사업주만이 바로잡을수 있다"미국에도 있는 산업안전청, 왜 한국엔 없나?
2019.03.14 16:59:27
美 OSHA 전 청장 "사업주는 노동자에 안전 제공 의무 있다"
OSHA(산업안전보건청, 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Administration). 미국 노동부 소속의 외청인 산업안전보건청을 뜻한다. 1970년에 만들어진 이 기관은 작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 관련 법령을 세우고 정책을 수립 및 집행하는 역할을 한다. 요는 노동자의 안전 관련한 제반사항을 총괄하고 사업주가 법을 어길시 법 집행까지 하는 독립기구라고 보면 된다. (관련기사 ☞ : "우리도 영국·미국처럼 안전보건청이 필요하다")

그곳에서 2009년부터 2017년까지 7년여 동안 청장을 지낸 데이비드 마이클스 박사가 한국을 방문했다. 산업안전보건청 역사상 가장 길게 청장직을 수행한 그다.

국가안전정책포럼과 한국산업보건학회 공동주최로 서울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미국 OSHA의 산업안전보건 시스템 및 감독 동향' 세미나에 강연자로 참석한 마이클스 박사는 미국의 산업안전보건청이 만들어진 배경을 두고 "사업주는 노동자에게 안전한 작업장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Employers must provide safe workplaces)"며 "OSHA의 역할은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법을 지키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이클스 박사는 이날 이러한 역할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산업안전보건청(OSHA)가 어떤 감독시스템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했다.

▲ 마이클스 박사. ⓒ프레시안(허환주)


"사업주만이 노동자가 안전한지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에는 산업안전보건 관련한 독립기구가 없다. 미국의 경우, 독립기구로 분리돼 있는 이유는 그만큼 미국 사회가 산업안전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로 치면, 식품안전만 따로 관리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독립기구로 존재하는 것에 비유할수 있다. 국민들의 먹거리만큼이나 노동자의 건강도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회적 풍토가 자리 잡은 것이다.

최근 김용균 씨 사고로 한국 사회에도 노동자의 안전사고에 여러 관심이 쏠리고 있다.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기도 했다. 핵심은 원청의 책임 강화와 산업재해 사망 시 사업주 처벌강화가 요지다.

하지만 법이 개정된다 해도 산업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질지는 미지수다. 법령이 이를 지켜야 할 사람에게 효율적으로 전달되면서 효과를 볼 수 있느냐는 집행의 영역이다. 하지만 한국의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은 이 부분이 취약하다. 고용노동부의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은 1년이 멀다고 바뀌는 등 전반적으로 정책 전문성의 취약과 일관성의 부족 등을 지적받고 있다.

산업안전 전문가들이 미국의 산업안전보건청 같은 독립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이러한 독립기구가 설립될 경우, 노동자의 건강권 관련해서 종합적인 목표를 세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책전문가들도 체계적으로 양성할 수 있다. 산업재해에 수세적이고 임시로 대응했던 것에 반해, 좀 더 선제적이고 예방적 개념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의 산업안전보건청도 모든 사업장을 관리하고 이를 통해 산업재해율을 낮추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근로감독관이 항상 모든 사업장에 있을 수 없을뿐더러 그 숫자는 전체 사업장수에 비할 바가 안 되기 때문이다.

마이클스 박사는 "사업주만이 노동자가 안전한지를 확인할 수 있다"며 "그들이 직장을 안전하게 만들 수 있는 일종의 '당근'과 '채찍'을 제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마이클스 박사는 이를 제시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마이클스 박사는 "정부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업주들에게 작업장 내 위험을 선제적으로 제거하도록 장려하는 것"이라며 "또한 만약, 이를 준수하지 못하면, 그에 따른 처벌을 받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정부에서 명확한 시그널, 즉 산업안전보건법을 지키지 않으면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원칙을 확실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작위 검사 진행했더니 부상률도 보상비용도 줄었다"

산업안전보건청은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법을 지키도록 하기 위해 감독조직이 매우 크고 강력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방식으로 집행을 효율화하고 있다. 무작위 추출에 의한 감독 대상 선정, 그리고 언론을 통해 감독을 예고하고, 감독 결과를 언론에 공개하는 방법 등이 그것이다.

이중 무작위 추출에 의한 감독 대상 선정이란 일정 수준 이상 위험이 있는 업종을 선정하는데, 예를 들어 낙농업 사업장을 위험 업종으로 선정했다고 하자. 그러면 산업안전보건청은 1000개의 낙농업 사업장에 3개월 내에 감독을 하러 갈 수 있다는 연락을 한다. 그런 다음, 이런저런 위험을 관리하라는 사전공지를 한 뒤, 도움이 필요하면 산업안전보건청으로 연락하라고 한다.

그리고 3개월 뒤, 전체 낙농업 사업장 중 단 3개의 낙농업 사업장만을 감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 심각한 위반이 있는 사업장의 경우, 그 내역 전체를 언론에 공개한다.

마이클스 박사는 그렇게 사업주가 자신의 사업장을 선제적으로 관리하도록 일정한 수준 이상 위험이 있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감독대상을 무작위로 선택한 뒤, 감독하는 방법은 매우 유용하다고 설명했다. 마이클스 박사는 "그렇게 무작위로 검사를 진행했더니 노동자의 부상률이 9.4%감소했고, (산재) 보상비용도 26%가 줄었다"고 설명했다.

마이클스 박사는 이렇게 무작위로 검사를 할 경우 "사업주들은 언제든지 검사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며 "그렇기에 그들은 작업장 내 존재하는 위험을 수시로 제거할 뿐만 아니라,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게 된다"고 밝혔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근로감독관이 사업주에 검사에 대해 사전통지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관건이다.

미이클스 박사는 "또한, 그렇게 무작위로 선정된 사업장의 검사 결과를 공개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사업주들은 검사 결과가 공개되고 그 결과에 따라 자신들의 평판이 떨어지고 올라간다는 것을 알아야 상시로 작업장의 위험을 제거한다"고 설명했다.

"안전모를 쓰게 하는 게 사업주의 역할"

하지만, 대부분 사업주들은 노동자가 일하다 죽거나 다치는 것은 '노동자 개인의 부주의'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마이클스 박사는 "그렇게 노동자를 탓하는 사고방식은 우리가 반드시 싸워야 하는 대상"이라며 "노동환경은 정부도, 일하는 노동자도 바로잡을 수도 없고 오로지 사업주만이 바로 잡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현장 감독을 나가면, 사업주는 안전모를 쓰지 않는 노동자가 있다고 하소연한다. 그러면 우리는 사업주에게 '왜 노동자에게 안전모를 쓰도록 하지 않나'라고 묻는다. 그러면 사업주는 '우리가 쓰라고는 하는데도 자꾸 벗어 던진다'고 답한다. 그럴 경우, 우리는 사업주에게 이야기한다. '그렇게 안전모를 벗어 던지는 노동자도 안전모를 쓰게 하는 것이 사업주의 역할이다'. 사고의 대부분은 노동자가 잘못해서 발생했다고 하지만, 사고의 본질적인 책임은 그렇게 노동자가 사고를 당하게 한 사업주에게 있다고 봐야 한다."

사업자 책임론의 연장선에서 마이클스 박사는 원청 기업의 책임론도 언급했다. 마이클스 박사는 자신이 청장으로 있던 시기, 미국 조지아주에 있는 현대·기아차 공장을 방문했을 때를 이야기하며 "원청인 현대·기아차의 제조상 문제는 발견하지 못했지만 그 밑에 있는 사내하청에서는 굉장한 문제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마이클스 박사는 "이에 2015년께,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현대·기아차 관계자를 만나 사내하청의 관리도 당신네(원청)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며 "그 관계자들은 '알겠다'고 했는데, 이듬해 6월, 현대·기아차 공장에서 결혼 2주를 앞둔 (하청업체 소속) 젊은 여성이 로봇기계에 깔려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미 산업안전보건청은 당시, 안전관리 의무이행 소홀 등의 이유로 사고가 발생한 하청업체 등에 30억2000만 원(256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주목할 점은 당시 산업안전보건청은 사망사고의 최종 책임을 현대·기아차, 즉 원청에 있다고 한 점이다. 한국의 경우, 하청노동자의 사망사고를 조사한다 해도, 이렇게 원청의 책임, 즉 사망의 구조적 문제까지는 밝혀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조사결과였다.

마이클스 박사는 "당시 하청에 벌금을 물렸지만,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은 현대·기아차에서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산업재해에서 원청의 책임성 강화가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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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기자 kakiru@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