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오사카 즐기는 법, 혼자 가서 서서 마셔라"
[인터뷰] <오사카는 기꺼이 서서 마신다> 저자 박찬일
2019.02.16 16:00:56
박찬일 "오사카 즐기는 법, 혼자 가서 서서 마셔라"
오사카. 먹다 망한다는 도시. 천하(일본)의 부엌으로 불린 도시. 한국인이 가장 즐겨 찾는 외국 여행지가 오사카다.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외식의 격전지를 기자 출신 요리사 박찬일이 조명했다. 조명은 특정한 가게에만 집중했다. 싸고, 서민적이며, 현지인에게 친숙한 곳. 

<오사카는 기꺼이 서서 마신다>(박찬일 글, 한정수 사진, 모비딕북스)는 20여 년 간 오사카를 찾은 박찬일이 들른 700~800여 곳의 술집, 밥집, 라멘집, 디저트집 중 간추린 107곳을 정갈한 글과 사진으로 소개한 책이다. 

젊은이들이 찾는 힙한 술집, 커피집, 라멘집, 디저트집에도 힘이 실렸다. 하지만, 특별히 책에 소개된 여러 다치노미(たちのみ, 선술집)에 관심이 쏠린다. 도시화 시기 전국에서 몰려든 저임금 노동자들이 싼 값에 목을 축이던 다치노미야는 버블 붕괴 이후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이후 저임금 구조가 고착화하고 혼자 지내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일본에서는 꾸준히 다치노미형 술집이 늘어났다. 다치노미 붐의 핵심이 오사카다. 

다치노미야만이 핵심은 아니다. 술 상자 위에 캔 통조림이나 마른 안주를 놓고 술을 마시는 아주 저렴한 술집인 가쿠우치(角打ち, 주류도매상에서 기인한 술집 형태), 재일동포의 한이 서린 야키니쿠야(やきにくや), '일본'하면 떠오르는 이자카야(いざかや, 선술집과 앉아서 마시는 술집을 통칭하는 술집) 등이 다양하게 소개되어 있다. 

대부분 술집은 한국 관광객에게는 특별히 알려지지 않았고, 현지인에게 친숙한 값싼 곳이다. 일본 미식가들의 평점 정보가 오른다는 타베로그에 높이 평가받는 가게는 거의 없다. 난바보다는 후쿠시마(원전 사고가 난 일본 혼슈 북부의 후쿠시마가 아닌, 오사카 북부 도심)와 신이마미야(노숙자가 많은 것으로 알려진 오사카 남부 지역)의 골목 곳곳에 숨은 가게가 이 책의 지면을 장식했다. 

정기영 모비딕북스 출판사 대표에 따르면, 당초 목적은 오사카 밥집 취재였다. 하지만 "찬일이 형이 계속 술집만 기웃거리고, 그곳에 들어가야 행복해하더라. 그래서 아예 술집 취재로 목적으로 바꿨다. 형이 바로 '오케이'하더라." 그래서 이 책은 저자의 표현대로 "알코올로 농축한 일종의 액체 책"이다. "술이 윤활유"인 오사카를 종횡무진한 저자가, 기꺼이 그들과 어깨를 부딪고, 그들 사이에 들어가 입으로, 눈으로, 기타 각종 감각으로 경험한 결과를 추리고 추린 결과물이다. 

14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의 한 카페에서 저자 박찬일과 인터뷰를 했다. 왜 하필 오사카인지, 왜 하필 선술집인지를 들었다. 그 이야기를 추린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오사카는 기꺼이 서서 마신다>의 저자 박찬일. ⓒ프레시안(최형락)


한국은 오사카를 모른다

프레시안 : 왜 오사카인가?

박찬일 : 오사카는 술 마시기 좋은 도시다. 일본에서, 아니 세계에서 제일 좋다. 

아침부터 술파는 집이 많다. 24시간 노동이 돌아가는 대도시이기 때문이다. 아침이 밤인 사람들이 그곳을 찾는다. 한 번은 아침술을 마시러 한 가게에 들렀는데, 여성 셋이 들어와서 술을 마시더라. 알고 보니 야간 당직 후 퇴근한 간호사들이었다. 

일본에는 한국처럼 밤늦도록 문을 여는 술집이 많지 않다. 더구나 택시비가 비싸 도쿄와 같이 큰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새벽까지 음주를 즐기기 어렵다. 하지만 오사카는 상대적으로 괜찮다. 도시 크기가 작아 택시비 부담이 적다. 도심에서 택시비 3~4만 원이면 닿는 거리에 베드타운이 조성되어 있다. 

오사카는 전형적인 상업 도시다. 예부터 오사카 상인은 유명했다. 상인이 많으니 유흥 문화도 발달했고, 자연스레 음식을 향한 욕망이 아주 강한 도시가 됐다. 오사카가 술 마시기 좋은 도시가 된 점으로 한 가지를 더 꼽을 수 있다. 

오사카는 숨 막히는 도시다. 공원이 부족하고, 도시는 작고, 사람은 많다. 더구나 일본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직장 내 갑질 등의 스트레스가 극심하다. 오사카 시민의 삶의 질이 전반적으로 도쿄에 비해 떨어진다. 급여 수준도 더 낮다. 그 사람들이 결국 술 마시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프레시안 : 값싼 술집, 특히 다치노미야에 집중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요리사이자 음식 평론가인 박찬일이 찾는 가게라면 당연히 고급 가게이리라 생각했는데 의외다. 

박찬일 : 나는 값싸고 사람 냄새 나는 가게를 좋아한다. 고급 가게는 재미없지. 이 책을 쓰기 위해 오사카 요릿집을 취재할 때 일인당 5만 원 정도 하는 장어 요릿집에 가기도 했다. 그 가게에 관한 원고도 써뒀다. 하지만 결국 책에 싣지 않기로 했다. 콘셉트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대중적인 가게, 누구나 갈 수 있는 가게에 초점을 맞췄다. 

오사카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다치노미야가 아주 발달했다는 점이다. 다치노미야에서는 오사카 사람들의 특징을 쉽게 엿볼 수 있다. 

다치노미야는 구조상 손님 간 거리가 아주 가깝다. 어깨를 부딪으며 술을 마시게 된다. 모르는 누구와도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다. 

오사카 사람들이 남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대화하길 즐긴다. '도쿄 사람들이 새침하고 오사카 사람은 대범하다'는 이미지는 일본에서도 정형화되지 않았나.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에도 이 같은 에피소드가 나온다. 오사카 사람들이 남과 어울리는 데 특히 거리낌이 없다. 이런 정서가 다치노미야와 아주 잘 어울린다. 

▲ 이자카야 도요. 공동묘지 옆에 자리한, 모두가 서서 마시는 인기 술집. ⓒ모비딕북스


프레시안 : 그 같은 가게를 소개하기 위해 이 책을 썼나?

박찬일 : 한국 사람 대부분이 오사카의 진면목을 모른다. 오사카에는 많이 가지만 검색하면 쉽게 나오는 가게,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국어 메뉴판을 준비한 가게 정도에나 들른다. 난바와 도톤보리 근처만 둘러보는 정도다. 현지인이 좋아하는 맛집이 많은데, 이런 곳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안타까웠다. 

물론 이치란라멘, 킨류라멘에 줄을 서서 먹어도 된다. 본인이 원하면 그런 곳에 가면 된다. 하지만, 오사카의 진면목은 현지인이 찾는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다치노미야, 일본의 보통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

프레시안 : 아무래도 한일 관계가 요즘 안 좋다보니, 오사카를 방문하지 않은 한국인 중에는 방문을 꺼리는 사람들이 많을 듯하다. 

박찬일 : 얼마 전 한국 관광객을 상대로 와사비를 듬뿍 넣어 곯린 오사카의 '와사비 폭탄 가게'가 논란이 된 적 있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장사하는 질 낮은 가게에서 저런 불쾌한 경험을 할 수도 있다. 

그런 곳 말고 현지인들이 찾는 가게에 가면 대우받는다. 그런 가게에서 한국인은 금값이다. '저 사람들이 어떻게 여길 알고 왔지?' 가게 주인이고 손님이고 궁금해 하면서 힐끔힐끔 본다. 그러다 누군가가 안주도 사주고, 술값을 대신 내주기도 한다. 

혼자 가면 더 좋다. 그들과 곧바로 친구가 된다. 서로 엉터리 영어로 얘기하고, 안 되는 일본어로 얘기하고, 한자를 이용해 필담을 나눠서 이야기할 수 있다. 저는 한자세대라 더 쉬운 면이 있는데, 오사카의 한 할아버지와 두 시간 동안 필담을 나눈 적도 있다. 그 분이 일본의 군사 문화를 비판하며 한국인에게 미안하다고 하시더라. 오사카의 현지인 가게를 찾으면 일본의 선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프레시안 : 오사카가 한국과 밀접한 역사를 갖고 있다. 

박찬일 : 오사카에 한국인(재일동포)이 많다. 그들이 한국에 상처를 입기도 했지만, 동포애도 느낀다. 책에 소개한 곳인 모리타야(森田屋)라는 가게 주인은 김동우라는 분이다. 우리가 한국말로 이야기하며 술을 먹으니 그 분이 조용히 자기 이름을 한글로 적어 보여주시더라. 한국말은 할 줄 모르셨다. 

한인타운이 형성된 츠루하시(鶴橋)역 주변에 야키니쿠(불고기) 거리가 있다. 그곳에 제주도 출신이 많이 산다.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도 많다. 책에도 몇 군데 소개했다. 그곳이 야키니쿠 성지가 된 이유가 이주한 한국인이 불고기 가게를 운영했기 때문이다. 츠루하시의 야키니쿠가 일본 전역으로 퍼졌다. 요즘 일본에서 야키니쿠의 인기는 단연 톱이다. 

프레시안 : 일본에 다닌 지는 얼마나 됐나?

박찬일 : 한 20년 된다. 음식기자로서 취재도 많이 갔다. 일본의 관광기구 등이 음식기자를 초청하는 행사가 예전에 많았다. 미식 여행이 중요한 여행 패턴임을 일본이 예전부터 간파했다. 우리는 음식을 관광상품으로 팔기 시작한 게 얼마 되지 않는다. 

그렇게 다니면서 내린 결론이 '술 마시기에는 단연 오사카가 톱'이라는 것이다. 오사카 사람들이 술을 미친 듯이 마신다. 당연히 술집 경쟁이 심하다. 그야말로 완전 경쟁이다. 돈 10원 차이로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한다. 그러니 '더 싸게, 더 맛있게, 이윤은 최소한으로' 음식을 만들려는 경쟁이 치열하게 일어났다. 

오사카의 서민 술집 대부분이 마진이 매우 박하다. 오사카 음주 물가에 적응하면 일본 다른 도시 물가에 놀란다. 

ⓒ모비딕북스


선술집에서 모두가 친구가 된다

프레시안 : 다치노미야가 성행한 요인에 가격 경쟁이 있는 것 같다. 다치노미는 혼자서 찾아가도 어색하지 않아 보이는데, 한국에도 소개된 일본의 드라마에도 이런 모습이 많이 나온다. 

박찬일 : 술을 서서 마신다는 건 통합이다. 술집에서 서 있으면 남에게 의지하고 싶어진다. 혼자 서 있으면 외롭기 때문이다. 자연히 다른 손님,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한 다치노미야가 일종의 커뮤니티다. 오사카의 많은 술집에서 주인과 손님이 매우 친밀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이유다. 보통 다치노미 내부가 디귿자나 미음자 형태이고, 주인은 그 한가운데에 있다. 손님과 주인의 거리가 매우 가깝기에 이야기를 나누기 좋다. 더구나, 좁은 공간에 최대한 많은 손님을 받을 수 있는 배치이기도 하다. 테이블이라면 열 명이 들어갈 공간에 다치노미로는 스무 명이 들어갈 수 있다. 이런 게 중요한 단골 만들기 전략이다. 

한국 외식 문화와 일본 외식 문화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가 제공되는 음식의 크기와 양일 것이다. 일본 술집에 다녀본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단품을 작고 싸게 내놓는다. 다치노미는 특히 더 작다. 쿠시카츠(串カツ, 오사카식 꼬치 튀김)나 어묵, 두부 등이 개당 우리 돈으로 1000원 정도부터 시작한다. 조림 2000~3000원, 생선회 한 접시에 3000~4000원 선이다. 물론 매우 작은 크기이지만, 말도 못하게 값이 싸다. 

그러니 오사카에서는 하시고자케(はしござけ, 술집 순례)가 일상이다. 이 가게에서 생맥주 한 잔에 튀김 하나, 저 가게에서 사케에 조림 하나, 다음, 또 다음. 술집들이 그야말로 다닥다닥 붙어 있다. 바 호핑(Bar Hopping)이 가능하다. 

한국에서는 어렵다. 한국 안주 문화는 오사카와 다르다. 오사카 서민 술집이 회전율을 올리려고 싸게, 작게 내놓는 반면, 한국 서민 술집은 한 손님을 오래 붙들기 위해 안주 하나당 양이 많게, 가격을 비싸게 받는 전략을 취한다. 오사카만큼 손님 회전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사카의 다치노미야에서는 회전율을 올리기 위한 각종 전략이 나타난다. 손님당 음주 시간 제한을 두거나, 스마트폰 게임 사용을 금지하는 가게도 있다. 심지어 안주 나눠 먹지 말라는 가게도 있다. 오직 술 마시고 음식 먹는 데만 집중하라는 거다. 그래야 그 손님이 나가고 다음 손님이 또 그 자리를 채우니까. 이게 가능한 이유는, 그만큼 다치노미야 인기가 많아서다. 인기점의 경우 한겨울에도 줄을 선다. 그러니 손님이 계속 회전되는 게 가능하다. 마치 오사카 전체가 거대한 알코올 공급소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프레시안 : 요리사이자 외식 사업가로서 한국의 술집이 오사카의 방식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고 보나?

박찬일 : 한국에는 한국식 음주 문화가 있다. 한국은 모든 분야에서 변화가 무척 빨리 일어나지만, 특정한 고집은 아주 강하다. 예를 들어 테이블에서 술 마시는 행위가 고착화되었다. 한국인은 술집에서 타인과 이야기를 잘 나누지 않는다. 자기 공간 개념이 아주 강하다. 길거리에서 걸어 다닐 때는 타인의 어깨를 마구 치고 가지만, 술집에서는 내 공간에 타인이 들어오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이런 특징이 있으니 오사카식 음주 문화를 한국에 가져오기란 어렵다. 

일본의 프렌치 비스트로, 서서 먹는 프랑스 요릿집이 한국에 들어온 적 있다. 금세 테이블로 바뀌었다. 한국 사람들이 서서 먹는 걸 너무 싫어했기 때문이다. 곳곳에 '서서갈비'라는 간판을 붙인 식당이 있는데, 그 중 제대로 서서 먹는 곳은 연남동 서서갈비 본점뿐이다. 

▲ "일본 사람들 술 아주 좋아한다. 우리와 똑같다." ⓒ프레시안(최형락)


한국인이 선술집에 익숙지 않은 이유?

프레시안 : 이 책의 후속편을 계획하고 있나? 염두에 둔 다른 도시가 있나?

박찬일 : 이 책이 잘 된다면 출판사에서 고심하지 않을까? 출판사가 하자면 시도해 볼 텐데, 시간이 충분할 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술 마시기에는 오사카가 최고니, 굳이 다른 도시를 찾기보다 '오사카 2편'이 더 낫지 않을까? (웃음)

프레시안 : 책의 중심에 '다치노미 정서'가 있다고도 여겨지는데, 한국에도 예전에는 선술집이 많지 않았나?

박찬일 : 있었다.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는 확실히 있었다. 조선 후기에 있었는지는 기록이 없어 확실히 알 수 없다. 

지금도 지방 소도시 장터에 가면 선술집이 보인다. 그곳에서는 시장 사람들이 서서 술을 마신다. 일하다 말고 잠깐 들어와 김치 한 조각, 멸치볶음 따위 무료 안주에 막걸리 한 잔을 털어 넣고 다시 일터로 복귀하는 사람들 풍경이 나온다. 순라길(돈화문길)에 가면 지금도 노인들이 주로 찾는 선술집이 있다. 김치, 번데기, 단무지 조각 등 기본안주가 대여섯 접시 나오고, 막걸리 한 잔, 소주 한 잔에 1000원 받는 잔술이 제공된다. 

프레시안 : 일본 다치노미 형태가 한국에 들어왔다고 봐야 할까?

박찬일 : 원래 한국에도 선술집이 있었는지, 일본 다치노미야가 일제 강점기 무렵 선술집으로 한국에 들어온 건지는 명확치 않다. (강제합병 전인) 구한말에 선술집이 있었으니 아마 조선 후기에도 선술집 형태가 있지 않았을까 추정은 된다. 자료가 없다. 

선술집 문화는 세계 여러 곳에 있다. 바(Bar)가 본래는 서서 마시는 곳이다. 영국의 펍(Pub)을 봐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서서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제대로 된 음식을 먹는 사람 정도가 2층에 올라가 테이블에 앉는다. 유독 한국과 중국에서는 선술집 문화가 대중화하지 않았다. 

프레시안 : 왜 그런가?

박찬일 : 그 이유는 모르겠다. 어쨌든 한국의 음주 문화는 테이블에 앉아 오직 지인과만 이야기를 나누는 형태다. 우리는 심지어 포장마차에 가도 앉아서 마신다. 

▲ 박찬일이 책에서 최고의 다치노미로 꼽은 와스레나구사. ⓒ모비딕북스


"다크 덕스 합시다!"

프레시안 : 책을 보면 저자가 독자에게 '현지인이 득실한 다치노미야에 가서 그들과 섞여라'고 권하는 것 같다. 

박찬일 : 꼭 그럴 필요야 없지. 하지만 얘기하면 좋죠. 

굳이 팁을 드리자면, 셋 이상이 다치노미야에 가면 자리를 구하기 어렵다. 기껏해야 10석 정도 규모 식당에 셋이 가면 자리가 잘 안 난다. 반면 혼자 가면 쉽게 앉을 수 있다. 줄을 서더라도 혼자 온 사람이 먼저 자리를 잡을 공산이 크다. 

더구나 서서 마시는 곳이니 공간이 조금 나면 손님 사이에 끼어 들어가도 된다. 자리가 좁다 싶으면 손님 누군가가 "다크 덕스(Dark Ducks) 합시다!"하고 외친다. 일본의 오래된 남성 사중창단의 이름인데, 이들이 텔레비전 화면에 동시에 들어가려고 비스듬히 서서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걸 따라해 비좁은 술집에서 서로 어깨 빼고 좁혀 서서 공간을 만들자는 뜻으로 대중화했다. 이게 다치노미의 룰이다. 

프레시안 : '일본 음식은 깔끔하다' '일본 가게는 청결하다'는 식의 고정관념을 가지기 쉬운데, 그런 고정관념을 깨주는 가게를 여럿 소개했다. 

박찬일 : 일본에 지저분한 가게 엄청나게 많다. '일본 가면 생맥주가 끝내준다'는 것도 다 과장이다. 백화점 아케이드에 있는 식당이나 블로그에 잘 소개되는 큰 식당 같은 곳만 가서는 이를 알 수 없다. 마지막으로 빨래한 지 얼마나 됐을지 감이 안 잡히는 주방복을 입은 종업원이 일하는 식당도 가 봤다. 난 그러려니 하고 술을 즐겼다. 

그들을 이해할 구석이 있다. 오사카 식당일이 엄청난 격무다. 경쟁이 워낙 치열하니 딱 정해진 노동력과 재료로 만들 수 있는 최선의 요리를 내놔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일하는 사람들 표정을 보면 스트레스에 찌들어 있고, 피로에 찌들어있음이 보인다. 그래서 옷을 못 빨아 입고, 주방 청소를 못한다. 사람 한 명 더 뽑으면 더 깨끗한 가게를 만들 수 있겠지만, 그럴 여건은 되지 않는 거다. 위생은 비용이다. 오사카 서민 술집은 말하자면 '우리 음식 최대한 싸게 내놓을 테니 조금 더러워도 봐 주세요'라는 입장이다. 

프레시안 : '오사카는 더럽다'는 이미지가 일본에서도 있는 듯하다. 재일동포가 많이 산다는 지역 특성을 일본의 극우적 사람들이 이용한다 생각했는데, 치열한 외식업계의 가격 경쟁이 이 같은 분위기를 만들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되는 대목이다. 

박찬일 : 도쿄가 오사카보다 조금 더 청결한 느낌은 있다. 하지만 도쿄와 오사카의 역사적 반목에 따른 뿌리 깊은 원인이 더 큰 것 같다. 한국의 지역감정은 비할 바가 아니다. 

'일본은 청결하다' '일본은 한국을 싫어한다'는 식의 이미지가 우리에게 있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고, 그런 가게도 있다. 하지만 한 나라를 정형화하기란 매우 어렵다. '한국은 어떻다'라고 외국인에게 우리가 설명할 수 있나? 일본도 마찬가지다. 

프레시안 : 일본에 관한 또 다른 선입견이자 한국인을 향한 선입견으로 '일본인은 술을 적당히 즐기고, 한국인은 술을 아주 좋아한다'는 게 있는 듯한데, 책에 소개된 오사카는 한국과 더 닮은 듯하다. 

박찬일 : 일본 사람들 술 아주 좋아한다. 우리와 똑같다. 2차, 3차 좋아하고, 3차에 가라오케(노래방) 가는 것도 똑같다. 아마 한국인과 술 문화가 가장 비슷한 사람들이 일본인 아닐까 생각한다. 

프레시안 : 이런 서민 문화가 점차 사라질 듯한데?

박찬일 : 아니다. 옛날의 서민적 풍모야 덜하지만, 선술집 문화는 오히려 더 강화됐다. 다치노미는 강력한 오사카 문화로 자리 잡았다. 한국어나 영어 메뉴가 없고, 현지인만 있으니 한국 관광객이 이런 분위기가 조금 어려울 수 있겠지만, 막상 들어가면 재밌다. 메뉴 모르면 옆 사람 먹는 메뉴 달라고 하면 된다. 가서 우물쭈물하고 있으면 어디선가 흑기사가 나타나 도움을 준다. 

프레시안 : 그런 곳에 다니면서 맺어진 인연이 있나?

박찬일 : 오사카에 갈 때마다 선물을 사다주는 친구가 있다. 와스레나구사(わすれな 草)라는 다치노미야 점주들이다. 책에 '단언컨대 오사카 최고의 다치노미 이자카야'라고 소개했다. 그 집 갈 때 한국의 매운 사발면 같은 걸 가져다주면 아주 좋아한다. 재일동포들이 예전부터 많이 살던 도시라 그런지 오사카 사람들이 한국의 매운 음식에도 열려 있다. 일본 중년들이 2차로 자주 가는, 마담이 있는 형태의 술집인 스낙꾸(스낵)라는 곳에도 김치 안주는 흔하다. 한국어는 못해도 재일동포 정체성은 지켜가는 동포 3세, 4세들이 많다. 그들이 운영하는 가게는 안주로 바로 알 수 있다. 굳이 '재일동포세요'라고 물어보지 않아도 안다. 그런 걸 물어보는 건 실례다. 

프레시안 : 이 책에 소개된 가게를 찾아 오사카로 떠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조언하고픈 말이 있다면?

박찬일 : 마음을 열고 가면 된다. 시민의 선한 의지를 믿으면 된다. 한국 가게에도 외국인 손님이 오면 더 친절하게 설명해주거나, 안주를 서비스해주는 집들이 많다. 오사카도 마찬가지다. 

용감해져라. 용감해져야 그들 틈에 끼어서 진짜 일본을 볼 수 있다. 돌아다니다 보면, 자기 기운에 맞는 가게를 찾을 것이다. 

참! 일본인들도 자주 쓰는 바가지인데, 자릿세 받고 음식은 별로인 업소가 있다. 그런 곳을 조심하면 된다. 

음식 문화, 계속 성장할 것

프레시안 : 기자 일을 하다 요리사로 전직했고, 이제는 음식 비평을 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박찬일 : 여러 일을 동시에 하는 거다. 기자는 동시에 작가다. 그런 차원에서 지금 일을 하고 있다. 바꿔 말하자면, 나는 특별히 잘하는 일이 없다. 다 고만고만하다. 이 일을 하나 하면 다른 일은 더 못하기 마련이다. 내가 타고난 기질이 무슨 일 하나에 가만히 붙어있질 못한다. 뭐, 어떡하겠나. 

프레시안 : 기자에서 요리사로 전직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릴 적부터 요리사의 꿈을 꿨나?

▲ <오사카는 기꺼이 서서 마신다>(박찬일 글, 한정수 사진) ⓒ모비딕북스

박찬일 : 전혀 아니다. 다만, 되새겨보니 요리사가 될 수밖에 없었겠다 싶다. 젊을 적부터 음식에 불만이 컸다. 음식이 맛없는 식당, 서비스가 나쁜 식당에 아주 크게 화를 내곤 했다. 잡지 시절 동기를 얼마 전 만났는데, '예전부터 네가 술집이나 밥집에 불만이 많았다'고 하더라. 대신 내가 좋다고 말한 집은 잘 나갔다. 맛있는 집, 좋은 가게에 대한 감각이 있었던 것 같다. 단순히 서비스가 좋다, 음식 맛이 좋다는 차원이 아니라 손님을 돈으로만 보지 않는 가게, 따뜻한 가게를 향한 열망이 있었던 것 같다. 

프레시안 : 전직한 이유가 뭔가?

박찬일 : 기자를 더 하면 안 되겠다 싶었다. 기자의 일은 두 가지다. 취재하고 글쓰는 것. 취재와 글쓰기를 회사를 위해 하지 않을 뿐, 지금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자유로운 기자라고 생각한다. 기자로서 가져야 할 공익적 책무에는 전혀 관심 없지만, 내 나름의 방식으로 글을 쓰고 있다. 

프레시안 : 이전작인 <백년식당>, <노포의 장사법>은 기록으로서 가치가 아주 큰 작업이었다. 여전히 박찬일의 정체성에는 기자가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 

박찬일 : 그 책은 기자로서 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번 책은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한 결과물이다. 술을 마신 결과를 정리한 책이다. 술을 마시고 나면 아세트알데히드가 생기는데, <오사카는 기꺼이 서서 마신다>는 아세트알데히드와 같은 책이다. 

프레시안 : 기자적 글로 <백년 식당> 시리즈를 두 권 썼고, 자유로운 즐김의 결과로 <오사카는 기꺼이 서서 마신다>를 썼다. 다시 노포 발굴 책을 낼 계획이 있나?

박찬일 : 한국의 노포를 제대로 정리하려면 책 서너 권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책 작업에 에너지가 너무 많이 소모된다. 더구나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어서인지 일이 즐겁지 않았다. 당분간은 어려울 듯하다. 

<백년 식당>과 <노포의 장사법>을 취재하면서 남긴 취재수첩과 사진, 녹음물이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됐다. 내 생전에 관련 전시가 만들어질지는 모르겠다. (웃음)

프레시안 :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음식이 우리 사회에 중요해졌다. 음식 예능, 먹방이 콘텐츠의 중심이 되었다. 음식이 이처럼 중요해진 이유가 뭘까?

박찬일 : 음식 콘텐츠는 세계적인 유행이다. 그 유행이 한국에도 온 것뿐이다. 미식 문화가 외국에서 유행했고, 그 유행이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한국에도 들어왔다. 음식 예능 프로그램이 외국에도 유행하니 한국에서도 유행할 뿐이다. 

음식처럼 비교적 저렴한 제작비로 시청률을 보장할 수 있는 콘텐츠가 기실 별로 없다. 식욕은 수면욕, 성욕과 함께 사람의 가장 강력한 욕구잖나. 음식이 '생존의 음식'에서 '미각의 음식'으로, 나아가 '관계의 음식'으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이제 '맛있는 음식을 누구와 어떻게 먹을 것인가'가 중요하지 않나. 한 마디로 미식의 사회적 기능에 우리가 조금 더 주목하고 있다. 이에 관한 고민이 이제 우리 사회에도 깊이 들어왔다. 음식에 관한 담론이 만들어지고, 더 많은 사람이 담론에 참여하면서 음식 문화가 형성되어갈 것이다. 

프레시안 : 음식 비평 담론이 예능만큼 빠르진 않지만, 역시 천천히 성장하는 것 같다. 

박찬일 : 전체적으로 성장이 이뤄지고 있다. 음식을 사회적 시선에서, 역사의 시선에서 다룬 연구자가 예전에는 정말 드물었다. 요즘은 조금씩 생기고 있다. 일본의 경우 음식 연구 서적 시장도 크다. '급식의 사회학'과 관련한 대중서적도 나온다. 우리는 음식 담론이 형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시장도 작기 때문에 아직은 그 같은 책이 부족하다. 

프레시안 : 앞으로 특별히 세운 계획이 있나?

박찬일 : 저는 닥치는 대로 사는 사람이라 계획이 전혀 없다. 다만 현재 하는 일이 원활하길 바랄 뿐이지, 계획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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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기자 eday@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기자가 되면 거지부터 왕까지 누구나 만난다고 들었다. 거지한테 혼나고 왕은 안 만나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