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꾼'들아, 박찬일과 함께 오사카에 가자!
'술꾼'들아, 박찬일과 함께 오사카에 가자!
[프레시안 books] 박찬일 <오사카는 기꺼이 서서 마신다>
2019.02.03 10:31:55
'술꾼'들아, 박찬일과 함께 오사카에 가자!
거침이 없다. 단도직입. 바야흐로 공개적인 술 예찬이 금기시된 시대에, 용감하다. 일본어투 표현법을 쓰자면, 마치 장강의 끝자락에서 앞물결로 돌진하겠다라는 태도처럼. 요사이엔 어쩐지 술자리 풍경도 씁쓸하다. 일면식도 없는 타인이 당신에게 금욕을 당당히 요구하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술을 앞에 두고 이러면 안 되지'란 말을 함부로 뱉을 수 없는 시대엔, 낙지볶음과 1.8리터짜리 한산소곡주를 앞에 둔 사람들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가기도 한다. 

"한산소곡주라, 선비가 과거를 보러 가는 길에 이 술을 먹고 눌러 앉아버렸다고 하네." 
"그래? 그것 참 슬픈 일이군."

슬픈 일이라니. 과거 시험을 팽개치고 술을 마신 기개를 칭찬하던 시대에서, 이제 술에 얽힌 전설조차 한심하게 여겨지는 시대. 그런 시대에선 '나 술꾼이야'라는 말을 대놓고 할 순 없다. '술 먹지 말라'고 계몽하고 훈계하는 것이 '올바름'이 된 세상이다. 이 쯤에서 요리사이자 작가인 박찬일이 등장한다. 박찬일이 쓴 <오사카는 기꺼이 서서 마신다>(모비딕북스)는 '술꾼'이 천대받는 시대를 작심하고 거스르겠다고 선언하는 것 같다. 

이 책의 '들어가는 글' 격인 '그 가게가 정말 거기에 정말 있을까'는, 제목부터 노골적이다.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지만 난 분명 거기서 마신 기억이 난다는 것인데, 산울림의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거야> 노래 가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흥얼거리는 느낌이다.  

자, 이 책에 대해 말하자면, 술꾼의, 술꾼에 의한, 술꾼을 위한 이야기이자 안내서다. 박찬일이 택한 곳은 오사카다.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 도시는 '오사카 사람들이 오사카를 독립국으로 선언하다'는 설정의 드라마가 존재할 정도로 특별한 곳이다. 드라마에서 독립국 오사카에서는 만담 콤비 결성식이 결혼식보다 중요하다. 오사카에선 길거리 아무에게나 총 쏘는 시늉을 하면 '으악' 하고 죽는 시늉으로 화답한다는 농담이 있다. 시끄럽고 화통하고 쿨한 사람들의 도시는 술꾼들의 천국이다. 개미굴 같은 골목에 두 세 사람 서있을만한 공간만 있으면 술집이 들어서 버린다.  



문학적인 글로 독자를 매료시켜왔던 요리사이자 평론가, 작가인 박찬일은 이 책에서만큼은 우회하지 않는다. 술집으로 직진한다. 펍 크롤링(Pub Crawling)이라든지, 바 호핑(Bars Hopping), 하시고자케(술집 순례)라고 하든지, '한 잔에 한 점' 식으로 술집과 술집 사이를 기어다니고 튀어 다닌다. 유쾌한 술꾼처럼 점잖은 순례자처럼 지난 10년간 박찬일이 다닌 곳은 줄잡아 700~800곳. 이 책을 위해서만 200곳 이상을 다녔고, 기록에 '그 가게가 정말 거기에 있'는 걸로 확인해 기록한 곳만 100곳 이상이다. (식당 70곳, 밥집과 카페, 빵집 등 37곳) 취재비를 엄청나게 썼다고도 했다. 

그래도 독자들이 찾아갈 수 있게 만들었다. 포켓북 형식의 '인덱스'까지 별책 부록으로 끼워준다. 책을 한번 훑었다면, 앙증맞은 이 포켓북을 들고 오사카행 비행기 티켓을 끊으면 된다. 이런 실용적 세심함까지. 

"오사카 술집 기행은 우연히 시작되었다. 펄럭이는 노렌(포렴)과 시도 때도 없이 찾아드는 술꾼의 현장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을 때부터다. 사라져가는 술맛의 기원을 찾아서랄까. 술꾼이 술꾼다울 수 있는 공간에 낮게 젖어들고 싶었다. 그 여정은 대폿집 기행의 오사카판이 되었다. 

그렇게 수십 차례의 취재가 이어졌다. 끝까지 마셨고, 기억이 나지 않아 기록하지 못한 집이 많았다. 다시 갔다. 계절이 바뀌면 또 갔다. 이순, 즉 20일마다 제철 음식이 바뀐다는 오사카 술집의 안주를 꼿꼿이 보았다. 술꾼들의 천국, 오직 술을 마심으로써 존재를 확인하려는 것 같은 오사카 사람들." 

▲<오사카는 기꺼이 서서 마신다> 中 ⓒ모비딕북스


기자도 오사카에 갔었다. 목적은 마찬가지. 먹고 마시는 것이다. '개미굴' 속에서 사람들은 투명한 하이볼이나 미즈와리(찬물을 탄 술), 생맥주를 들고 삐딱하게 서서 마시고들 있었다. 마침 이 책에 처음 소개된 술집은 교바시역 인근의 이자카야 도요였는데, 기자 역시 이 곳을 들른 적이 있던 터라 매우 반가웠다. 비교적 한적한 거리인데도 사람들이 모여 있어 눈에 띠는 '노천 포차'랄까. 그곳에선 젊은이건 노인이건 식탁라든지, 아무렇게나 세워놓은 '도라무깡' 위라든지 술잔을 세워 놓고 '오사카 사람답게' 마시고 떠들어댔다. 요새 서울에서라면, 이런 곳은 진작에 신문 사회면에 등장해 탄압을 당했을 터다. 훈계질과 계몽조로 무장한 문장들에 서걱 베이고 절뚝거리다 최후를 맞을 것이다. 이미 서울은 금욕의 도시가 된 지 오래다. 종로에선 노포를 삼십층 건물 한켠에 옮겨 놓았다. 국적 불명의 디자인이 새겨진 의자와 테이블 위에서 오래된 국물을 숟가락으로 뜬다. '포스트 모던'으로 돌진하려는 '모던 전사'들처럼. 그러나 오사카엔 아직 '스팀펑크 전사'들의 공간이 있다. 

"오사카는 온통 콘크리트 숲이다. 개미굴 같다. 그 굴 어디선가 다들 끊임없이 마시고 있다. 삭막한 길, 골목 안쪽 술집에 등이 켜지면 사람들이 들어선다. 오사카 사투리가 퍼지고 술기운으로 불콰해진 사람들이 2차를 위해 떠난다. 나는 그 틈에서 마셨다. 마시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음주를 조장하는 거대한 그물에 같힌 것 같았다. 

이 도시에서 술은 윤활유다. 그렇게 이 도시가 돌아간다. 오사카 사람들은 기꺼이 서서 마신다. 싸고 빠르고 더 많은 이들과 어깨를 부딪을 수 있다. 카운터는 정원이 없다. 어이 이봐 이 곳에 서라고 도라아에즈 비루(일단 맥주부터)!"

세심하고 고급스러운 맛을 찾아나선 게 아니라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술꾼들의 천국'을 소문 듣고 찾았다. 간혹'고급 인맥'을 활용해 정보를 수집해 취재했다. 요컨데, 그는 술이나 음식이 아니라, 술집을 통째로 마신 후에 기록을 남긴 셈인데, 박찬일은 이렇게 쓴다. 

"이 책은 알코올로 농축한 일종의 액체 책이다. 짜면 술이 흐를지 모른다. 많이 마셨다. 촬영을 위해 담배도 피웠다. (아내가 알면 무척 화를 낼 것이다.) 오사카에는 술꾼의 낭만, 철 지난 치기가 있었다. ... 잠깐 짬을 내어 오사카를 여행하고 생맥주 몇 잔을 마시는 것이 다일지 모를 여러분에게는 무척 미안하지만, 나는 이기적으로 마셨다. 그리고 그 시간을 오래 남기려는 마음으로 기록했다. 그것이 책이 되었다." 

글맛도 넘친다. 식당집 아들 출신 박찬일은 작가다. 그것도 트렌드에 가장 민감한 여성잡지 기자 출신 작가다. '술꾼의 낭만'이나 '스러져 가는 노포'를 자주 찾는다고 해서 그의 취향을 '올드하다'고 할 순 없다. 오사카의 대표적인 술집인 다치노미야(선술집)를 비롯해 야키니쿠야(고기구이집), 이자카야, 가쿠우치, 고료리야, 바, 스낫쿠, 그리고 라멘, 우동, 소바, 스시, 카레, 양식(요쇼쿠), 덮밥, 정식(우리나라의 백반), 카페, 빵집, 식재료점이 책에 담겼다. 무려 아침 8시부터 술집에 줄을 서는 사람들(126페이지, '논키야'), 평일 대낮에 양복 입고 혼술하는 노신사들(130페이지, '메이지야'), 늦은 오후부터 모여 싸구려 소주를 서서 마시는 사람들(72페이지, '하나노쇼텐'), 매일밤 힙한 바에서 술 파도타기를 하는 청춘들(180페이지). 

'허물어져가는 21세기의 패총'에 비유한 식당 '겐지'를 찾은 박찬일은 호피를 시켜 먹는다. 호피는 보리를 볶아 만든 갈색의 무알코올 음료인데 가난했던 쇼와 시대였던 1948년 처음 출시됐고, 노동자들과 백수들은 그 음료에 싸구려 잔술 소주를 타서 맥주를 흉내내어 마셨다.

"지금도 그 향수를 잊지 못하는 오지상(나이 든 아저씨)들이 시키는 술이다.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호피를 한병 시키고 소주를 시켜 알아서 섞어 마신다. (소주가 모자라면 이렇게 외친다 '나카다케 오카와리!(가운데만 추가) 그러면 주인은 소주를 잔에 따라서 건넨다. (1980~90년대 거품 경기가 쓸고 간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 집이겠다. 이 집에서 낮술 마시고 쓰루하시 시장과 골목을 슬슬 거닐면 뭐랄까, 주체할 수 없는 감정 과잉에 괜히 울컥해진다."

서울의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금욕에 익숙해졌다. 일상의 금욕은 미덕이 됐고, 술 좋아하는 사람, 담배 피우는 사람은 '혐오'의 대상이 돼 버렸다. 한강에선 금주, 건물 내에선 금연. 조심해서 먹고 피우지만 조금이라도 '비금주자'와 '비흡연자'의 마음에 안 들면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훈계를 들을 각오도 해야 한다. 먹방을 규제한다던가 하는 일들이 실제로 논의된다. 흡연실엔 의자와 테이블이 있으면 안되고, 공원에서 캔 맥주를 마시면 천한 것들이 된다. 일상의 금욕은 상상력을 제한하고 죄의식을 부추긴다. 금욕을 강요받는 사회는 경직된다. 상상력은 죽어간다. 그러나 억눌린다고 사라지는 건 아니다. 사실 은근히 각광을 받는다. 일본 드라마 <와카코와 술>, <심야식당>, <고독한 미식가>를 독립운동 하듯 몰래 보고, 읽고 설렘을 느낀적이 있는 사람들, 진짜 술꾼들은 이 책을 '오사카 바이블', '술꾼의 백과전서'로 여기게 될 것이다. 

물론 담배도 끊고 싶고, 술도 적당히 먹고 싶다. 단, 죄의식을 동력삼지 않고 내 의지를 존중받으며 존엄하게 그렇게 하고 싶다. 

▲<오사카는 기꺼이 서서 마신다> 中 ⓒ모비딕북스

▲<오사카는 기꺼이 서서 마신다> 中 ⓒ모비딕북스

▲<오사카는 기꺼이 서서 마신다> 中 ⓒ모비딕북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박세열 기자 ilys123@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