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자원에 과세해 기본소득 재원 마련해야"
"공유자원에 과세해 기본소득 재원 마련해야"
[인터뷰] 프레시안 칼럼 복귀하는 유종성 가천대 교수
2018.11.30 09:06:23
2016년부터 2017년까지 <프레시안>에 정기 칼럼을 기고한 유종성 전 호주국립대 교수가 약 1년여의 휴지기를 끝내고 지면에 돌아온다. 그 사이 유 교수 신상에 변화가 있었다. 호주 생활을 마치고, 올해 7월 귀국해 가천대 사회정책대학원에 새로 둥지를 틀었다. 

칼럼 재개를 기념해 <프레시안>은 지난 28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서교동 프레시안 회의실에서 유 교수와 복귀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 주제는 크게 두 가지다. 문재인 정부의 지난 1년 반에 관한 평가와 한국의 사회·경제 개혁을 위해 기본소득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관한 이야기다. 하나는 실천 학자로서 유 교수의 생각을 듣기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유 교수 전공 분야의 지식을 대중에게 소개하기 위함이다. 이 두 가지 주제는 앞으로 유 교수가 칼럼을 통해 <프레시안> 지면에 더 구체적으로 풀어나갈 내용이기도 하다. 

인터뷰에서 유 교수는 한국 사회·경제 개혁을 위해 전 국민의 납세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과감한 주장을 했다. 누구나 국세청 홈페이지에서 특정인의 납세 정보를 검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납세 정보가 궁금한 이라면 누구든 그의 소득과 재산 및 납세액을 확인할 수 있게끔 하자는 뜻이다. 파격적이다. 민감한 개인 정보를 이렇게 공개해도 되느냐는 생각이 들 법한 내용이다. 

유 교수는 보편적 복지 강화를 위해 증세는 반드시 필요하며, 증세를 향한 국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북유럽처럼 한국도 납세자 정보를 투명화 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에서 이 같은 방법을 제안했다. 

유 교수는 한편 소득주도 성장으로 대표되는 문재인 정부의 사회·경제 개혁에 관해서는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다. 최저임금 인상 외에 뚜렷한 구체적 실천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다. 즉, 소득주도 성장이 잘못된 게 아니고, 소득주도 성장을 제대로 안 해서 문제라는 지적이다. 구호만 있었고 내용이 부족해서 이 같은 결과가 나왔으니,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정책 틀을 짜야 한다고 유 교수는 조언했다. 표면적으로는 보수 언론의 문재인 정부 공격 방식과 비슷한 주장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핵심을 짚는 시각은 크게 다르다. 

유 교수는 한국 시민사회운동의 대표적 존재다. 1982년부터 한국 YMCA 전국연맹에서 일했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사무총장을 지내기도 했다. 경실련 시기 그는 금융 실명제로 대표되는 개혁 정책을 제안해 한국 경제 민주화에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나이 마흔이 훌쩍 넘어 유학을 선택했고, 2006년 하버드대에서 정책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 캠퍼스와 호주국립대에서 교수 생활을 이어오다 올해 귀국했다. 그의 연구 성과의 대표격이라 할 만한 <동아시아 부패의 기원>(김재중 옮김, 동아시아 펴냄)은 한국에서도 주목받은 바 있다. (☞관련기사: 문제는 '김영란'이 아니라 '박정희'다!

이번 인터뷰는 박인규 프레시안 이사장이 진행했다. 다음은 유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 

▲ 유종성 가천대 사회정책대학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문재인 정부, 남북관계 개선 역사적 성과지만...

프레시안 :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반이 지났다. 크게 남북관계 및 대외관계, 국내 정치, 사회·경제 문제의 세 가지로 나눠 그간 정부 정책을 평가해봄 직하다. 우선, 크게 지난 시간 문재인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듣고 싶다. 

유종성 : 전쟁 일보 직전까지 치닫던 한반도 상황, 북미 간 긴장 국면이 문재인 정부 출범 후 평화와 화해 분위기로 바뀌었다. 이것만으로도 문재인 정부는 역사적으로 공로를 평가받아 마땅하다. 

다만 최근 북미관계가 교착 상태에 들면서 남북관계마저 제 자리 걸음을 이어가는 듯해 아쉽다. 북미관계나 대북 제재에 관계없이 정부 차원에서 추진할 수 있는 일은 더 적극적으로 추진하면 좋겠다. 이산가족 상봉이나 남북 통신의 자유화 등이다. 

앞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답방이 이뤄질 텐데, 국론 분열과 찬반 집회자 간 충돌이 우려된다. 정부가 각계 여론을 선제적으로 수렴해 준비를 잘 할 필요가 있다. 찬반 국민이 각자 목소리를 자유롭게 표출하게끔 하되, 가급적 넓은 이념적 스펙트럼에서 남북관계에 관한 합의의 폭을 찾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다만 다른 부분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워 보인다.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현 정부를 향한 사회경제적 개혁과 정치 개혁에도 국민의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최근 경제가 어려워지고 일부 개혁의 후퇴 조짐이 보이면서 기대가 실망으로 변했다. 소득주도 성장의 기치 아래 정부가 일자리 창출과 최저임금 인상을 내세웠는데, 오히려 고용은 줄어들고 빈부격차는 더 커졌다. 당분간 이 문제가 개선되리라는 전망도 보이지 않는다. 

현 정부 정치 개혁의 핵심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일 텐데, 여당은 이미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진보세력으로부터도 외면 받을 수밖에 없다. 당장의 유불리만 따진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소득주도 성장', 구호만 있었다

프레시안 : 문재인 정부 대외 정책의 핵심이 한반도 평화, 정치 개혁의 핵심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였다면 사회·정치 개혁의 핵심은 소득주도 성장이다. 현 정부 탄생을 견인한 촛불 시민의 궁극적 목표도 결국은 개개인 삶의 개선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정부 출범 1년 반이 지나 상황은 오히려 나빠졌다. 

유종성 : 현 정부가 남북관계 문제에는 준비를 잘 한 것 같은데, 사회·경제개혁에는 구호만 있고 준비가 미진했던 것 같다. 자신감이 부족해 보인다. 

프레시안 : 최저임금 인상안은 어떻게 보나? 그간 정부가 추진한 소득주도 성장의 핵심 정책이다. 

유종성 : 최저임금 인상에 관해 나는 조금 걱정하는 입장이었다. 한국의 인상 여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시기 이미 최저임금 미만율이 10%를 넘었다. 애초 한국 상당수 고용주에게 임금 지급 여력이 부족했다. 이 상태에서 최저임금 기준을 급격히 올리면 고용에 충격이 올 수밖에 없다는 건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 

내가 오랜 기간 교수로 지낸 호주가 세계에서 최저임금 수준이 가장 높은 나라의 하나다. 호주가 유럽에 비해 복지 제도가 빈약함에도 최저임금 수준이 높아 복지 공백을 메울 수 있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나라는 넓은데 인구는 적고, 광물자원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어떤가? 이미 자영업은 포화상태다. 자영업주가 웬만한 정규직 노동자보다 월 소득이 더 적다.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면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정책이 을과 을의 싸움으로 귀결된 이유다. 

프레시안 : 소득주도 성장 자체를 폐기하라는 보수 세력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종성 : 그 생각에는 반대한다. 일단, 소득주도 성장 자체가 크게 이상한 개념이 아니다. 소득주도 성장은 국제노동기구(ILO)가 제시한 임금주도 성장의 한국식 변형 개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제안한 포용적 성장 개념과도 통한다. 

포용적 성장을 위해서는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해소해야 하고, 이를 통해 실질적 기회의 불균등을 해소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은 이를 위한 하나의 정책수단일 뿐이다. 

프레시안 : 큰 틀에서 소득주도 성장은 올바르지만, 최저임금 인상은 잘못이었다?

유종성 :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었다. 

최저임금 인상은 가격규제 정책의 하나다. 가격규제 정책 자체가 특별한 건 아니다. 박정희 정권 때도 수출 인센티브를 주는 식으로 가격규제 정책을 실시했다. 그런데, 시장 경제가 상대적으로 발달하지 못했던 당시도 정부가 시장을 완전히 무시하면서 정책을 펴진 못했다. 가격 규제(최저임금 인상)를 무리하게 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 최저임금 인상은 저소득, 불안정 노동자에게 시급한 과제였으나, 유 교수는 그 속도가 너무 빨랐다고 지적했다.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늦추는 대신, 청년수당, 기초연금 등의 부분적 기본소득제를 과감히 도입해 복지 공백을 메웠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초기부터 EITC 확대하고 기본소득 도입했어야

프레시안 :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늦춘다면 당장 어려운 환경의 민생을 어떻게 해결하나? 

유종성 :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조절하는 대신 근로장려세제(Earned Income Tax Credit, EITC)를 정권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확대했어야 한다. 정부가 뒤늦게 내년부터 EITC를 대폭 확대키로 했는데, 시기가 늦었다. (EITC는 노무현 정부 말기에 도입되었으나, 그간 대상자가 적었고 지급액도 적었다.)

아울러 아동수당과 기초연금은 더 증액해야 한다. 청년수당 도입 등 새로운 정책도 적극적으로 추진했어야 한다. 이들 모두 실질적으로 소득을 늘리는 소득주도 성장 방안의 하나다. 하필 정부가 저항은 크고 효과는 임금노동자에 한정되는 최저임금제도에만 집중하면서 실질적으로 복지를 개선하는 길을 찾지 못했다. 

프레시안 : EITC 역시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가격규제 방안의 하나는 아닌가?

유종성 : 아니다. EITC는 가격에 개입하지 않고 저임금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소득을 정부가 보전해주는 정책이다. 기본소득이나 부의소득세(Negative Income Tax)가 조건 없이, 즉 노동 여부에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일정액을 보전해주는 정책이라면, EITC는 근로빈곤층의 소득을 보전해주는 제도다. 부의소득세 아이디어는 사실 밀턴 프리드먼과 같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논의가 먼저 나왔다. 1970년대 미국에서 좌우를 가리지 않고 이 방안을 진지하게 고려했지만, 결국 상원에서 막혀 도입되지 않았다. 그 대안으로 EITC가 도입되었다. 

프레시안 : 아동수당과 기초연금은 일정 연령대에 한정한 기본소득 정책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를 확대하자고도 했다. 유 교수가 제안한 소득주도 성장의 패키지는 결국 ‘아동수당(모든 아동)-EITC(저임금 노동자)-기초연금(모든 노인)’ 체계인데, 부분적인 기본소득제 도입으로 보인다. 

유종성 : 그렇다. 정부가 기초연금과 관련해 하위 70% 저소득층 노인만을 대상으로 한 선별적 복지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보편화하는 한편, 과세소득화해야 한다. 정부 방침은 올해 기초연금을 최대 월 25만 원으로 인상하고 내년 중에 하위 30%에 한해 월 30만 원으로 인상한다는 것인데,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5만 원을 지급하고 일정 연령 이상이 되면 지급액을 인상하는 방안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노인 중 절대다수는 면세점 이하 소득자다. 일부 고소득 노인에게만 6.6%에서 최대 46.2%의 소득세(지방소득세 포함)를 걷으면 된다. 그러니 보편적으로 기초연금을 도입해도 빈곤노인에게는 혜택을 더 늘리고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혜택을 줄일 수 있다. 복잡한 복지 체계는 더 깔끔해질 수 있다. 

아동수당 역시 마찬가지다. 만 6세 이하는 월 20만 원~30만 원 수준으로 인상하고, 지급 대상 연령을 만 15세 내지 18세까지 확대해야 한다. 이를 위한 재원 일부는 가정양육수당과 전업주부 보육료 지원 등에서 충당해야 한다. 

'전 국민 안식년 제도'?... "복지 상상력 발휘할 때"

프레시안 : 전업주부 보육료 지원을 깎자는 소리인가? 부족한 복지 수준이 더 후퇴하지 않을까?

유종성 : 맞벌이 부부가 아닌 경우에도, 더구나 0세 유아에게도 전일 보육료를 지원하는 나라는 내가 알기로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스웨덴의 경우도 0세와 1세 유아에게는 보육료 지원을 하지 않고, 육아휴직만 지원한다. 0~1세 유아는 가급적 부모가 양육하는 게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0세아에게도 월 80만 원의 비싼 보육료를 전액 지원해주니 많은 전업주부가 0세아를 보육시설에 온종일 맡긴다. 이에 따라 오히려 맞벌이 부부가 아이를 맡길 곳을 찾지 못한다. 영아 인권 차원에서도 잘못된 정책이다. 

따지고 보면, 기존 한국 복지 정책 중 적잖은 게 소득 역진적이다. 고소득층이 혜택을 보고 저소득층은 혜택 받지 못하는 복지 제도가 많다. 출산수당, 아동수당과 보육료 지원 등도 소득재분배 측면에선 역진적이다. 대부분 저소득층은 결혼도 못한다.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이 있어야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는다. 따라서 과세소득화를 통해 역진성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소득세의 소득공제와 같은 조세지출이야말로 매우 역진적이다. 한국의 소득세는 명목상으로는 매우 누진적이다. 소득세 명목세율은 최저 6%에서 최고 42%까지 누진적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실효세율은 낮다. 여러 소득공제, 세액공제 혜택에 따라 감면을 많이 받는다. 이를 조세지출이라고 하는데, 고소득층일수록 세금감면(조세지출) 혜택을 훨씬 크게 받는다. 대단히 역진적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소득세 실효세율 세수가 OECD 평균의 절반수준에 불과한 이유다. 지금 세제 체계로는 조세의 소득재분배 효과가 작다. 복지지출 재원이 적으니 복지급여를 통한 소득재분배 효과도 미약해진다. 

이뿐만이 아니다. 부가가치세, 법인세의 조세감면에도 대기업이 더 큰 혜택을 입는 역진적 부분이 있다. 해당 항목들만 잘 조정해도 소득재분배 효과를 크게 볼 수 있다. 

프레시안 : 정리하자면, 한국의 현 복지제도는 오히려 중산층 이상이 혜택을 입는 구조라 개혁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기본소득제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인다. 

유종성 : 상당 부분 그렇다. 기초연금처럼 저소득층에게 주된 혜택이 가는 제도도 있지만, 고용보험이나 국민연금 등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가 더 큰 혜택을 누리고 비정규직 등 불안정 노동자는 사각지대에 빠진다. 문제 해결을 위해 당장 도입 가능한 기본소득 아이디어가 기초연금과 아동수당, 청년수당, 농민·농촌수당 등이다. 장기적으로는 기본소득 아이디어를 더 확대할 방안도 충분하다. 

예를 들어, 전 경제활동인구를 대상으로 10년 중 1년은 기본소득을 주는 방안을 마련할 수도 있다. 일종의 '전 국민 안식년 제도'다. 그렇다면 노동자가 10년에 1년은 일을 줄이거나 쉬면서 다른 아이디어를 찾거나, 새로운 기술 훈련을 받거나, 여행하거나, 혹은 일하면서 기본소득까지 받을 수 있다. 이 같은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는 얼마든 있다. 

▲ 복지 확대를 위해서는 증세가 필요한데, 국민의 대정부 신뢰도는 낮다. 이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유 교수는 납세정보 전면 공개를 제안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증세 위해 납세 정보 투명화 필요

프레시안 : 궁극적으로 복지 확대를 위해서는 증세가 필요하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역시 증세에는 소극적이다. 기실 모든 정부가 '증세하면 정권 날아간다'는 공포를 갖고 있다. 

유종성 : 맞다. 실제로 증세하다가 정권 날아간 경우가 많다. 하지만 상당한 증세를 국민적 합의로 실현하기도 했다. 북유럽이 그렇다. 

최소한도의 핀셋 증세로는 과감한 복지 확대가 불가능하다. 한국의 복지 지출이 OECD 평균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확대를 위해서는 재정지출 절감과 함께 과감한 증세가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대다수 국민에게 증세하면 세금 부담보다 더 큰 혜택이 돌아온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설득해야 한다. 

프레시안 : 당장 보수 세력이 가짜 뉴스 등으로 여론전에 나서면 정부로서는 증세 거부감에 이미 빠진 국민을 설득하기란 불가능하지 않겠나? 국민의 정부 신뢰도가 안 그래도 크지 않다. 

유종성 : 맞다. 언제나 개혁은 어렵다. 잘못하면 정권이 실제로 날아간다. 가짜뉴스에 정부 개혁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내 제안은 납세자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자는 것이다. 당신의 소득 수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납세 실적을 모든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자는 얘기다. 

노르웨이, 핀란드가 그렇다. 이들 나라에서는 모든 국민, 법인의 지난해 소득, 세금 납부 수준을 누구나 검색할 수 있다. 스웨덴의 경우 지역별로 납세 정보 책자를 발간한다. 노르웨이는 국세청 홈페이지에 로그인한 누구나 다른 사람의 소득, 재산, 세금을 볼 수 있게끔 했고, 누가 내 세금 정보를 검색했는지도 알 수 있도록 쌍방향 정보 공개를 한다.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19세기 중반부터 납세 정보를 공개했다. 이처럼 투명한 정보 공개가 높은 사회적·정치적 신뢰, 낮은 부패율과 함께 높은 조세 부담과 복지에 관한 국민적 합의를 가능케 했다. 

그러면 자연히 국민이 '증세하면 내 소득 수준에서 얼마나 부담이 커지는지, 세금 부담이 실질적으로 커지는 소득 계층은 상위 몇 퍼센트인지' 등을 다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증세로 내가 부담하는 건 얼마며, 그에 따른 복지 확대로 내가 누릴 혜택은 얼마나 될지' 등을 바로 비교할 수 있다. 가짜뉴스와 싸울 힘을 갖게 된다. 그래야만 근거 없는 증세 불안을 없앨 수 있다. 

프레시안 : 민감한 개인 정보 아닌가?

유종성 : 아니다. 성적 지향이나 범죄 수사 경력 등은 이들 나라에서도 프라이버시로서 보호한다. 납세 정보는 민감 정보로 보지 않는다. 우리도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떳떳하게 벌어서 정직하게 세금을 냈는데, 굳이 숨길 필요가 있겠는가?

공공의 데이터 확보가 더 정교한 복지 시스템 구축을 위해서도 의미가 있다. 한국에서 소득 정보를 보려면 어떤 데이터를 사용하는가? 가구 조사 정보를 볼 수밖에 없다. 복지 패널, 노동 패널, 가계동향조사 등 직접 가정 문을 두드려 조사한 결과다. 최상위층 정보는 데이터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 집에 조사원이 들어가지 못하니까. 하지만 국세청 데이터에는 최상위층도 모두 포함된다. 한국의 어떤 뛰어난 조사원도 국세청만큼 정확히 국민 개개인의 납세 정보, 소득 수준을 조사하지 못한다. 

프레시안 : 정확한 복지 체제를 만들기 위해서도 세금 납부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얘기인가?

유종성 : 그렇다. 적어도 익명화된 정보는 국세청 등으로 행정정보를 통합하고, 나아가서 가구조사 정보와도 통합해서 연구자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기본소득을 도입하든 사회 보험을 강화하든, 여러 가지 정책 시뮬레이션은 필수다. 이를 위해서는 신뢰성 높은 표본을 확보해야만 한다. 가구조사 자료의 대표성은 빈약하다. 더 정확한 조사를 위해서라도 납세 정보를 투명화해야 한다. 이 정도의 정보화 능력은 한국이 갖고 있다. 

프레시안 : 언론뿐만 아니라 국회의원들에게도 제안해야 할 내용 같다. 

유종성 : 기득권층은 어차피 내 주장에 반대할 거다. 국회에만 얘기한다고 금방 되지 않는다. 시민사회운동,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진보 진영, 정부 적으로 규정하는 건 곤란"

프레시안 : 유 교수 전공인 사회·경제 부문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했다. 정치 개혁 문제는 짧게 짚고 넘어갈까 한다. 이해찬 대표의 이른바 '20년 집권' 발언이 나올 정도로 정부와 여당이 국정 초반에는 자신 있는 모습을 보였는데, 벌써부터 실망이 더 커지는 모양새다. 

유종성 : 대통령 지지율은 50% 아래로 떨어졌고,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집권 후 최저치인 40% 미만으로 떨어졌다. 최근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 조사를 보면, 2020총선 가상 대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수도권과 호남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민주당이 '특수한 승리'였던 지난 지방선거 결과만 보고 너무 좁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 싶다. 민주당이 진보, 개혁 세력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20년 집권'은 고사하고, 장기적으로 범 진보세력의 입지는 더 좁아질 것이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여러 차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약속했다가 이제 와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인다면, 누가 보더라도 소탐대실이다. 

민주당이 당장의 당리당략에 빠져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국민의 실망감은 투표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세계적으로 봐도 소선거구제 다수대표제 하에서는 보수나 중도 보수 세력의 집권 가능성이 크다. 반면, 비례대표제 다당제 구도에서 진보와 중도 세력 집권 가능성이 더 크다. 유럽 복지 선진국이 하나같이 비례대표 선거제도를 유지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다수대표제의 가장 큰 수혜자는 민주당이 아니라 자유한국당이다. 

결국 개혁이 가능하려면 민주당은 정의당, 평화당은 물론, 사안에 따라 바른미래당과도 연대해야만 한다. 지금이라도 민주당이 초심으로 돌아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정치에는 포용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 문재인 정부에 전반적으로 조언하고픈 내용이 있나? 

유종성 : 세 가지. 첫째, 포용적 국정 운영. 둘째, 정책 능력 제고. 셋째, 정치·사회·경제 모든 분야에서 개혁을 후퇴하지 말라는 것이다. 

청와대가 모든 일을 다 결정하고 여당과 장관에게 하달하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 비서실장 대신 대통령이 직접 여당 대표와 총리 등과 협의해야 한다. 5당 대표 회담 등 이벤트성 대화만 하지 말고, 실질적 소통을 해야 한다. 

정책 능력을 제고해 아마추어 국정운영이라는 말은 듣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구호만 있고 정책은 없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최저임금 인상 논란뿐만 아니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도 즉흥적 모습이 보였다. 그 결과 사회 곳곳에서 을과 을의 싸움을 정부가 부추긴 꼴이 됐다. 은산 분리 규제 완화 등에서는 여당과 협의 없이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모습을 보여 결국 공약 후퇴 비판을 자초했다. 정부 초기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판을 만든 것도 실수였다. 전형적인 박정희식 수출 독려 패러다임과 닮았다. 

편한 사람을 중용하기보다 실력 있는 인재를 등용하고, 학자와 관료의 능동적 참여를 이끌어내 개혁적이면서 현실성 있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프레시안 : 이미 한국 진보진영은 문재인 정부에 등을 돌리는 분위기다.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을 주도했던 노동·시민·사회단체 모임인 민중공동행동이 다음달 1일 국회 앞에서 '2018년 전국민중대회'를 열기로 했다. 

유종성 : 시민운동계가 현 정부를 적으로 규정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과거 진보진영이 노무현 정부에 실망해 정부를 공격한 결과가 이명박근혜 체제였다. 

현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진보학계가 과연 얼마나 정책적인 준비를 해왔느냐도 묻고 싶다. 물론 수권정당이 학계에만 정책을 의존해서는 안 되겠고 정당 정책연구소의 연구능력을 키워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학자들도, 운동권도 오늘날 한국 사회에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50% 미만으로 떨어졌다. 민심이 이반하고 있다. 민생 문제 해결이 시급한 상황이다. ⓒ리얼미터


공유자원에 과세해 기본소득 재원 마련해야

프레시안 : 2년 전 <동아시아 부패의 기원>이 나온 시기 <프레시안> 인터뷰에서 '(1950년대) 토지개혁에 준하는 사회경제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했다. 현 정부가 그 같은 담대한 구상을 하고 있다고 보나? 남북관계 개선을 제외하면, 정부와 여당의 구호는 이해찬 대표의 '국민소득 4만 달러' 정도다. 이명박 정부의 '747 공약'과 뭐가 다른지 의문이다. 

유종성 : 그간 소득주도 성장의 구체적 내용이 빈약했다. 앞으로 실질적인 정책 내용을 담을 수 있을지 지켜 볼 일이다. 

과거 한국은 자본주의 세계에서 유례없는 과감한 토지개혁을 통해 부와 소득의 불평등을 완화시켰고 봉건적 계급 구조를 타파했다. 이 같은 개혁이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를 가능케 했고, 산업화와 경제성장의 밑바탕이 되었다. (☞관련기사 : "경제 성장, 박정희의 공은 10%뿐이다"

하지만 그 후 한국은 재벌 위주 성장정책에 의존해 부와 소득의 불평등 심화, 재벌 경제력 집중 심화, 고용 없는 성장과 교육 기회 불균등이라는 늪에 빠졌다. 토지개혁 이전 사회구조로 돌아가고 있다. 이 상황에서 4차 산업혁명은 소득 불평등과 기회 불균등을 더 심화시킬 것이다. 더 늦기 전에 과감한 사회경제 개혁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 기본소득을 비롯해 앞서 강조한 복지 개혁이 그 같은 방편의 하나로 보인다. 또 다른 방안은 무엇일까?

유종성 : 독과점과 불공정거래를 철저히 규제해 자유 시장 경제를 확립해야 한다. 놀이 중심의 질 좋은 유아 공교육을 도입하고, 초중등교육의 형평성과 수월성, 창의성을 동시에 강화해야 한다. 땜질식 보완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아울러 토지, 환경, 지하자원 등 전통적 공유자원뿐만 아니라 과거로부터 축적된 지식정보자원도 사회적 배당 측면에서 공유자원으로서 활용해야 한다. 이들 자원으로부터 나오는 소득에 세금을 부과해 GDP의 일정 부분을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공유해야 한다. 

프레시안 : 12년간 미국과 호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이제 귀국했다. 귀국한 이유가 뭔가?

유종성 : 석, 박사 학위 취득기간을 포함 18년 반 만에 귀국했다. 귀국이야 항상 하고 싶었다. 그간 한국 대학에 10차례 이상 지원했다. 그런데 나이가 문제였다. 내가 2006년 학위를 받을 때 만 50세였다. 한국에 와서 선생님들을 만나 보니 ‘한국에서는 (그 나이로 교수 임용이) 어렵다’고 하더라. 미국이나 호주는 나이에 따른 차별을 못 하지만, 한국은 다르잖나. 

한국 대학은 정년이 있지만 미국의 경우 정년이 없다. 내 지도교수였던 로버트 퍼트남 교수의 경우, 내가 학위를 받을 당시 한국에서는 정년인 65세였다. 그는 지금도 수업에서만 은퇴하고 연구 교수로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프레시안 : 가천대에는 어떻게 가게 됐나?

유종성 : 특채로 사회정책대학원 전임교수 네 명 중 하나로 들어가게 됐다. 나는 사회복지분야 주임이다. 매주 화, 목요일 야간에 수업을 진행하는데 특히 NGO나 사회복지 기관에서 활동하는 분들, 공무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란다. 장학금 혜택도 많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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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기자 eday@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기자가 되면 거지부터 왕까지 누구나 만난다고 들었다. 거지한테 혼나고 왕은 안 만나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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