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못 돼도, 제발 괴물은 되지 맙시다"
"사람은 못 돼도, 제발 괴물은 되지 맙시다"
[사회 책임 혁명] 땅콩과 물컵, 그런데 '모든 임직원의 잘못'?
"사람은 못 돼도, 제발 괴물은 되지 맙시다"
"반드시 복수하겠어."

'땅콩 회항' 당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차녀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그의 언니인 조현아 부사장이 검찰에 출두한 날 보냈다는 문자 메시지다. 조 전무는 땅콩 회항으로 사회적 비난이 들끓자, 다음과 같은 메일을 직원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모든 임직원의 잘못입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메시지의 내용은 우리나라 재벌들, 특히 재벌 3세들이 얼마나 사회적 감수성이 부재하고 사태 파악과 대처 능력 또한 떨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물론 그들이 자라는 과정에서 선대(先代)로부터 보고 배운 결과물이다.

최근 조 전무가 뉴스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소리를 지르고 물이 담긴 컵을 던졌다는 등 이른바 '갑질'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다. 언니의 바통을 조 전무가 이어받은 셈이다. 녹취파일에 담긴 조 전무의 목소리는 그 장소가 대기업 회의실이라고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는데, 그 정도가 거의 병적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언행이 조 전무의 일상이라는 직원들의 증언에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조 전무의 갑질 처벌과 '대한항공'이라는 사명에서 '대한'을 빼고 '태극기'도 삭제하라는 청원이 여러 건 올라와 있다. '물컵 갑질'로 구설에 오른 지난 12일 하루 사이에만 시가총액 약 2228억 원이 증발했다. 대한항공을 비롯해 한진칼 주가도 급격히 추락했다. 이 지점에서 투자대상의 EGG 즉 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고려하는 사회책임투자(SRI)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게 된다.

필자는 땅콩 회항 당시 전 과정을 복기하면서 모 잡지사에 대한항공의 리스크 관리에 대한 장문의 글을 쓴 바 있다. 땅콩 회항을 '오너 리스크(owner risk)'로 규정하고 다음과 같은 진단을 내렸다.

△리스크의 근원 혹은 시작 : 봉건적이고 권위적인 기업문화
△리스크의 상승 : 골든 타임 놓친 사과
△리스크의 증폭 ① : 진심 없는 거듭된 사과
△리스크의 증폭 ② : 은폐와 조작
△리스크 수습 실패 : 이해관계자 관리 실패

특히 오너 일가들의 봉건적인 특권의식과 권위주의 의식을 타개하지 않는다면 땅콩 회항과 유사한 갑질은 수시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최고의 리스크 관리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라고 역설했다. 현재 대한항공의 대응은 땅콩 회항 당시를 답습하고 있다. 조 전무의 물컵 갑질도 전형적인 오너 리스크다. 여론이 악화되자 당사자는 짧은 사과글을 남겼지만 진정성이 없었고, 해외여행에서 돌아온 뒤 침묵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이 공백을 조 전무 방어에만 집중하고 있다. 오너 리스크의 대응의 전형적 특징이다.

오너 리스크는 기업의 지배주주가 불법적인 사건이나 비윤리적인 언행, 지배주주의 독단적인 경영이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는 위험을 말한다. 오너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다는 건 그만큼 오너가 잘못했을 때 기업에 끼칠 수 있는 리스크도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는 걸 의미한다. 우리나라처럼 재벌경영 구조에서 이런 리스크는 자주 발생하고 있으며, 사회적으로도 큰 물의를 일으켜 재무적 손해뿐만 아니라 기업의 명성과 가치를 훼손시킨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리스크 관리보다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재벌그룹의 지배구조는 매우 취약하다는 대내외적 평가를 받고 있다. 매우 적은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할 뿐만 아니라, 그룹 전체를 사유물로 인식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일단 접어 두자. 물론 조현아의 땅콩 회항, 조현민의 물컵 갑질, 여타 오너들의 비윤리적 행동들은 회사를 사유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경영권을 가족에게 대대로 자동 세습하는 문제만 집중해 보자. 현재 재벌그룹들은 창업주의 3세 혹은 4세에게 경영권을 세습했거나 세습을 진행 중에 있다. 이게 정당한가. 북한의 3대 세습은 비판하면서 왜 자신들의 세습에는 그토록 관대한가. 그나마 경영권 세습의 정당한 절차, 즉 상속세 및 증여세법 등 실정법을 지키려고도 하지 않는다. 탈법과 편법으로 이를 피하려고만 한다. 오죽했으면 당연히 내야 할 상속세를 낸 오뚜기가 '갓뚜기'로 칭찬받겠는가. 절차적 정당성 확보는 향후 경영권 승계 이후 실질적인 리더십 확보로 연동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그냥 넘어가 보자.

그렇다면 경영자로서의 자질과 훈련을 충분히 쌓았고 그 능력이 주주 등 이해관계자에게 검증되었는가. 일부를 빼고는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 조현아와 조현민은 대표적인 사례이며, 함량 미달 정도가 아니라 바닥이다. 오히려 기업 가치를 떨어뜨리고 종국에는 회사를 회복하지 못할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 선진국의 가족 기업은 단순히 창업자 가문이라는 이유만으로 후계자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후계자 양성프로그램을 통해 자질과 경영능력을 인정받아야만 한다. 혈연이 아니라 가능한 다양한 인적자원을 후보군에 올려놓고 치열하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 후계자를 선정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 하면 안 되는가.

필자는 현대 경영에서 경영자에게 필요한 중요한 자질 중 하나는 바로 사회적 감수성과 사회적 책임성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재벌 오너 일가들이 그동안 저지른 갑질과 폭력의 역사를 복기해 보면, 이 두 가지가 부족해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가 부족하면 괴물이 되기에 십상이다. 필자의 칼럼을 재벌 오너가 볼 리도 없고 설사 본다 해도 무시하겠지만, 그럼에도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제발, 괴물만은 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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