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명의 청년이 실명했다, 범인은 누구인가
6명의 청년이 실명했다, 범인은 누구인가
[서평] 메틸알코올 중독으로 실명한 청년의 이야기 <실명의 이유>
2018.03.31 10:24:14
2년 전 이맘때다.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박혜영 노동건강연대 활동가였다. 삼성전자에 휴대전화 부품을 납품하는 3차 협력업체 노동자 4명이 메틸알코올(메탄올) 중독으로 시력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단다. 이 중 3명은 실명 위기에 처해 있다고 했다.(현재는 총 6명이다) 다급한 목소리가 수화기로 넘어왔다. 

어떻게 그런 일이 발생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 동시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메틸알코올로 시력을 잃는다고?"

메틸알코올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기껏해야 소독약 정도로만 추측될 뿐이었다. 메틸알코올이 눈에 닿는다고 실명이 되나 하는 의문이 생긴 이유다. 뒤늦게 알게 됐다. 무지의 소치라는 것을.

메틸알코올은 투명·무색의 인화성 액체다. 분무기로 뿌려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반면, 인체에는 치명적이다. 고농도에 노출될 경우, 두통 및 중추신경계 장애가 유발된다. 심할 경우, 실명까지 올 수 있다. 

당시 시력을 잃은 노동자들은 모두 밀폐된 좁은 공간에서 메틸알코올을 사용했다. 메틸알코올은 휴대전화의 부품을 식히는 데에 사용한다. 이때 메틸알코올이 노동자에게 튈 수가 있다. 또한 식히면서 발생하는 증기가 노동자의 호흡기로 흡입되기도 한다.   

ⓒ민석기


아무 교육도 장비도 없는 파견 노동자

이런 사고를 겪은 노동자들은 단순히 재수가 없어서 실명했을까. 이들을 취재한 선대식 <오마이뉴스> 기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선 기자는 최근 그들을 취재한 내용을 묶은 <실명의 이유>(북콤마)를 책으로 냈다. 

선 기자는 그러한 작업이, 메틸알코올이 얼마나 위험한지 누구도 노동자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고 말한다. 일반 사람 입장에서는 메틸알코올의 위험성을 알기는 힘들다. 기자 역시도 메틸알코올로 시력을 잃는다는 이야기에 의문을 품었다. 

작업의 위험성을 노동자에게 고지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과 장비를 마련하는 것은 업체의 의무다. 하지만 이들 노동자가 일한 업체에서는 안전교육은 고사하고 작업할 때 변변한 안정장비조차도 지급하지 않았다. 이들이 실명한 이유다. 

"꿈에서는 앞이 안 보여요. 꿈이 안 깼으면 좋겠어요."

김영선 씨는 갑자기 시력을 잃었다. 메탄올 수증기가 가득 들이찬 스마트폰 부품공장에서,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1년 반 후, 같은 피해자가 5명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현순 씨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자기가 사용하는 액체가 눈을 공격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누구도 그 액체가 위험하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일하는 12시간 내내, 환기도 되지 않는 좁은 공장에서 메탄올을 들이마셨다. 무방비 상태였다. (<실명의 이유> 중에서)

실명,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사건

▲ 선대식의 <실명의 이유> ⓒ북콤마

선 기자는 이들의 실명 이유에 주목할 뿐만 아니라 그들 삶의 궤적도 추적한다. 그러면서 그들이 우리와 다르지 않은 보통의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실명은 우연히 일어난 사고가 아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사건'임을 꼬집는 것. 

선 기자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들 사건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도 짚어낸다. 실명을 당한 노동자들이 모두 파견노동자임을 지적하면서 파견법 문제를 조목조목 따진다. 

파견노동자로 공장을 돌리는 사업주는 파견업체를 통해 언제든 파견노동자를 채용한다. 

반면, 고용주로서의 책임과 의무는 지지 않는다. 파견업체에 공을 돌린다. 파견노동자를 사용하면서 권리는 무한으로 누리지만, 정작 그에 수반되는 의무, 즉 산업안전법 등은 전혀 지키지 않는 셈이다.  

파견법은 제조업 직접생산 공정에 파견노동자를 쓰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다만 일시·간헐적 사유가 있을 경우 6개월에 한해 파견 노동자를 쓸 수 있다는 예외가 있다. 그렇다보니 안전교육이나 안전장비 지급 등은 노동자에게 아득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불법이지만 법이 무력하다

노동자들에게 메틸알코올의 위험성만 알려줬어도 그들이 그렇게 어이없이 실명을 했을까. 선 기자는 "이것은 '불법'이지만 여기서(파견법 구조 하에서)는 법이 무력하다"고 토로한다. 

"우리 눈 다 나으면 벚꽃 보러 가자."
현순 씨는 자기처럼 앞이 캄캄한 동갑내기 피해자 진희 씨에게 말을 건넸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창밖을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현순 씨는 창밖 풍경이 오후 6시의 어스레한 저녁 시간 때처럼 보인다고 말했고, 
진화 씨는 빛이 물러간 밤 9시의 세상으로 보인다며 말을 받았다. 
그땐 봄날 맑은 하늘에서 햇빛이 가장 강하게 쏟아지는 시간이었다. <실명의 이유> 중에서

실명을 한 노동자들의 눈에 빛이 보이기란 요원한 일이다. 다만, 그들과 같은 이유로 실명하는 노동자들은 더는 없어야 하지 않을까. 선 기자가 <실명의 이유>를 낸 이유다.  

▲ 스물아홉의 이진희 씨. "저도 다치기 전에 풍경을 보면 시각이 먼저였어요. 근데 다치고 나서는, 바람을 타고 오는 꽃향기를 맡을 수 있게 됐어요." ⓒ민석기


▲ 전정훈 씨는 스마트폰 문자메시지를 확인하는 법도 터득했다. 문자메시지 화면을 갈무한 뒤 저장하고, 이를 최대한 확대해서 본다. ⓒ민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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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기자 kakiru@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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