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존중하는 경제는 가능하다
인간을 존중하는 경제는 가능하다
[생협평론] 협동조합, 현재 세계에서 가장 지속성 있고 강력한 풀뿌리운동
인간을 존중하는 경제는 가능하다
#1.
다른 경제는 가능하다. 그리고 다른 경제는 가능해야 한다. 다른 경제가 아니면 세계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옥스팜이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다보스포럼)를 앞두고 16일 발표한 '99%를 위한 경제' 보고서에 의하면 전 세계에 걸친 '부의 불평등'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세계 최상위 부자 8명이 전 세계 인구 절반인 36억 명의 재산과 같은 부(富)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년 전에는 388명이 나머지 인구 절반의 재산과 같은 부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부의 불평등은 해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2015년 이래로 전 세계 상위 1%가 나머지 인구 전체보다 더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다."

좋은 책인가, 아닌가를 구분하는 기준은 얼마나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가로 판별할 수 있다. 존 레스타키스의 <협동조합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 사람을 위한 경제, 그 이상과 실천을 만나다>(번역협동조합 옮김, 착한책가게 펴냄)라는 책은 우리에게 깊은 영감을 준다. 다른 경제에 대한 모색을 다룬 책 중에서 이렇게 잘 정리된 책을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 <협동조합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존 레스타키스 지음, 번역협동조합 옮김, 착한책가게 펴냄). ⓒ착한책가게

#2.
전 인류를 기만한 망상의 극치는 경제학에서의 '자기조정 시장'이라는 개념이다. 존 레스타키스는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망상의 극치인지를 이 책의 첫 장에서 규명해놓았다. 첫 장의 제목은 '거대한 망상'이다.

"경제적 망상이 극에 달한 시기에 '자기조정 시장'이라고 하는 심각한 기만은 역사상 가장 과감하게 적용되었다."(26쪽)

이 개념은 경제가 완전히 별개의 영역이고, 그 자체로 완벽하고 충분하며, 우리 삶을 구성하는 사회적·인간적 관계는 경제와 별개일 뿐만 아니라 경제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미국 금융시장의 붕괴와 세계 경제 질서의 파탄은 이런 비이성적 망상이 현실을 지배하도록 부추긴 대가였다.

"거대한 망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자유시장이 스스로 완벽한 질서 속에서 작동한다는 것을 넘어 '시장' 자체가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의 원천이라는 망상으로 진화한다."(27쪽)

이런 망상의 극치는 <역사의 종언: 이후의 시대 공산주의는 끝났다>(함종빈 옮김, 헌정회 펴냄)이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미국 정치경제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황당한 주장으로 이어진다.

"그는 인간 성취의 총체인 시장은 아무런 개입이 없을 때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완벽한 민주주의로 작동한다고 주장한다. 20세기 말 시장이 만든 민주주의가 다른 모든 세계관과의 경쟁에서 승리했다고 주장하면서 후쿠야마는 인류의 역사가 종착점에 다다랐다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진지하게 제기했다. '자유를 향한 끝없는 노력'이라 할 수 있는 인류의 역사가 미국, 서유럽 등 자유시장 국가 간 연대를 강화하는 신자유주의 질서 속에서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인류에게 미국에서 실현된 완벽한 자유시장 자본주의만이 남았고 그것이 역사의 종말이라고 말한다."

공산주의에 대한 찬양과 똑같은 논리 구조 아닌가? 한때 이런 망상 같은 주장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자유시장을 신봉하는 이들의 확고한 신앙은 맹목적 믿음, 절대적 확신, 증거를 무시하는 태도, 다른 시각에 대한 호전적인 태도 등 종교적 광신의 특성을 모두 지니고 있다. 경제학은 21세기 들어 물질의 시대에 완벽히 어울리는 세속적 종교가 되었다"(28쪽)고 저자는 말한다. 자유시장을 옹호하는 자본가들과 신자유주의자들은 신성하고 바람직한 정치체제인 민주주의가 경제에서는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본이 시장과 기업을 권위주의적으로 통제한다는 원리를 고수하는 한편, 자유시장과 그 연장인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의 기초라는 모순된 주장을 하는 것이다. 이 앞뒤가 맞지 않는 어리석은 주장은 거의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시장과 민주주의를 하나로 묶어서 생각하는 것은 너무 기본적인 혼동이자 기만이다.

"자유시장과 민주주의의 동일시는 사실 자유시장 옹호자들이 자본주의 경제의 비민주적인 현실을 덮기 위해 민주주의를 오용하고 왜곡한 결과다."(40쪽)

저자는 여기서 새롭게 문제 제기를 한다.

"민주주의가 정치에 바람직하다면 경제에도 똑같이 좋은 것 아닐까? 자유시장은 왜 권위주의적 지휘통제 모델에 의해 운영되며 개별기업에서는 독재권력 모델로 구현되는가? 이는 어린아이도 알 수 있는 근본적인 모순이며 자유시장 신화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시장이 자유로워야 한다면 시장을 구성하는 제도 역시 자유로워야 한다."(41쪽)

#3.
그렇다면 마르크스주의는 어떠한가? 사실 마르크스는 위에서 말한 고전적 정치경제학의 작업가설(working hypothesis)을 거의 대부분 수용했다. 불변의 경제법칙에 대한 사회적, 개인적 현실의 종속은 양자의 주장 모두 거의 변함이 없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무시무시한 표현은 자본주의사회의 왜곡된 거울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저자는 비판한다. 자기조정 시장이든 공산주의든 기독교의 천년왕국론이 경제적 법칙으로 세속화된 것이다.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법칙에 인간을 종속시키는 해방이란 대체 무엇인가?' 이런 운명론적 사고는 지금까지도 경제학에서 사라지지 않는 요소다. 시장 자체를 거부하는 마르크스주의의 조류들은 애초에 경제민주화에 관심이 없었다. 노동자가 착취당했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정당화한다는 듯 자본의 독재를 노동의 독재로 대체했을 뿐이다.

"마르크스주의 역시 경제를 개방적, 민주적, 윤리적 영역으로 만들고자 하는 노력을 지연시키는 수많은 포퓰리즘 중의 하나였다."(76쪽)

#4.
협동조합 모델, 협동조합운동은 로버트 오언(Robert Owen)이 제시한 이념적 모델은 실패하고 이상에서 실용으로 초점이 전환되었을 때 비로소 성공한다.

협동조합 모델이 세계 각국으로 확산되어 국민경제의 모든 부분에 뿌리를 내리면서 네덜란드와 북유럽에서는 농업 부분이 협동조합으로 재편되었고 지금까지도 농업생산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지금 세계는 자유시장 교리라는 단일한 세계관이 경제와 공공정책의 이론과 실천을 모두 지배하고 있다. 개인, 공동체, 모든 국가는 극소수 엘리트의 편협한 이익에 종속되었고, 이는 개인의 삶과 환경, 사회의 안녕에 재앙을 낳고 있다. 공동체와 국가는 소수가 아니라 다수를 위한 시장을 만들 대안을 찾아야 하는 지점에 서 있다.

협동조합은 사회적으로 긴밀한 연대를 이루고자 하는 매우 고유한 인간 본성의 구현이자 경제적 표현이다. 그래서 '협동이라는 방침에 따라 기존 경제 질서를 다시 짜는 것이 이제는 사회적 가치관과 인간 존엄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인간 생존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 책은 좀 더 인간적인 경제를 이루기 위해 세계 협동조합운동이 펼쳐온 경제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을 전 세계의 구체적 경험을 바탕으로 이론적, 실천적으로 풀어냈다. '경제에서 민주주의란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을 가장 실천적으로 구현하는 모델이 협동조합이다.

#5.
이탈리아의 에밀리아 모델(Emilian Model)은 주목할 만한 영감을 제시한다. 이탈리아 패션산업을 세계 최정상으로 이끌고, 에밀리아로마냐주를 경제적으로나 삶의 질 등 모든 측면에서 이탈리아 최고로, 나아가 유럽의 상위권으로 이끈 것은 에밀리아의 협동조합 클러스터였다.

"에밀리아 모델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최종 제품을 생산하는데 수많은 소기업들의 협력이 필요한 협동생산 시스템이다."(123쪽)

각각의 소규모 협동조합 기업들은 고도로 전문화되었으며 여러 네트워크를 통해 수출 제품을 생산한다. 이들 기업들은 협동과 경쟁을 통해 목표의식을 공유하고, 한 기업의 성공이 다른 모든 기업의 성공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한 기업의 성공이 반드시 다른 기업의 실패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협동과 상호부조의 문화가 성공을 이끌게 되었다.

이제 세계 곳곳에서 정치적 민주주의를 향한 운동이 경제민주주의 운동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 책은 이탈리아의 에밀리아 모델, 아르헨티나의 기업회복운동, 스리랑카 농민들을 중심으로 본 공정무역과 협동조합, 캐나다의 사회적협동조합, 일본과 인도의 사례 등을 통해 경제를 좀 더 인간적으로 바꾸어내려는 다양한 시도와 성공적 결과를 소개한다.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사업체에 고용된 고용 인원은 세계 다국적기업에서 고용한 고용 인원보다 많다. 협동조합은 2017년 현재 85개국에 걸쳐 존재하며, 조합원 10억 명 이상이 몸담고 있다. 협동조합운동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지속성 있고 강력한 풀뿌리운동'이다. 협동조합이 추구하는 가치와 이상은 일상의 삶 속에서 조용하게 확산되고 있으며, 오늘날 자본주의체제를 재구성하고 인간적으로 변화시킬 경제 모델의 열쇠다.

"지금보다 인간적인 경제 및 사회질서가 가능하다는 증거는 누구나 의지만 있다면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인간적인 경제는 건강한 생태계와 비슷하며, 그러한 경제를 만들려면 인간사회의 다양한 필요와 욕구를 충족하는 다양한 경제 조직을 계속해서 창조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존엄을 추구하는 다른 경제는 현실에서 이미 작동하고 있고 그것이 주도하는 다른 경제는 가능하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다른 글 보기
계간지 <생협평론>은 (재)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가 펴내는, 협동조합을 다루는 본격적인 전문잡지로서 협동경제·나눔·평화에 대한 의견들이 교환되는 공간입니다. 정보지이자 실천적 교육서로서 협동조합 활동가뿐 아니라 협동조합에 관심 있는 모든 이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전달하고, 협동조합을 둘러싼 다양한 사회·경제·문화적 이슈를 다룹니다.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