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현장 찾은 김제동 "MBC 사장, 우리와 같이 살자"
파업 현장 찾은 김제동 "MBC 사장, 우리와 같이 살자"
[전문] 'MB 블랙리스트'오른 연예인이 건네는 위로와 웃음
2017.09.13 18:02:16
파업 현장 찾은 김제동 "MBC 사장, 우리와 같이 살자"
국정원 적폐청산태스크포스는 12일 원세훈 전 원장 재임 초기인 2009년 7월, 국정원이 김주성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주도로 '좌파 연예인 대응 TF'를 구성, 정부 비판 성향의 연예인이 특정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도록 전방위로 압박했다고 밝혔다. 

일명 'MB 블랙리스트'에는 총 82명의 인사 이름이 올랐는데, 이중에는 방송인 김제동 씨도 포함됐다. 김 씨는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년 추모제 사회를 본 이후, 사실상 방송계에서 배제됐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김 씨의 공백을 두고 당시에는 확인 안 되는 소문이나 추측, 음모론으로 치부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하나둘 씩 그런 음모가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방송에서 모습을 감춘 뒤에도 각종 사회문제에 대한 견해를 소신 있게 말해 온 방송인 김제동 씨. 그는 'MB 블랙리스트'가 발표된 지 하루 지난 13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1층 로비에서 열린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10일차 파업 집회 초대손님으로 참석했다

아래 그의 발언을 요약해 올린다. 

▲ 김제동 씨. ⓒ프레시안(허환주)


"김장겸, 혼자 처박혀 있으면 얼마나 답답하겠나"

(김제동이 등장하자 일제히 박수) 그만하세요. 박수는 제게 치지 마시고 여러분 옆에 있는 분들에게 치시기 바랍니다. 그간 어떻게 견뎠느냐는 질문에 여러분은 가족 덕분에 견뎠다고 했습니다. 가족이 햇살 같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 말을 들으면서 저는 우울해지더군요. 저는 햇살 없이 살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제가 고2때부터 별명이 버섯입니다. 응달에 혼자 가만히 앉아 있다고 해서 붙은 별명인데요. 원래 말이 없습니다. 집에 가서도 말이 별로 없습니다. 아마도 혼자라서 그런 듯합니다. 햇살이 부럽습니다. 

사실 오늘 오면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제가 겪은 일은 여러분이 겪은 일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뭐라고... (지난 정권의 핍박 관련) 유명한 사람들만 주목 받는 것에 대해서 미안함이 큽니다. 그래도 여기 온 이유는 드리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나 같은 사람보다는 주목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진심으로 옆 사람 얼굴을 보면서 손뼉을 쳐주길 바랍니다. 

제 이야기를 조금 하겠습니다. (사드가 배치된 뒤 성주를 방문하고) 성주에서 올라오면서 굉장히 많이 욕을 먹었습니다. 이쪽저쪽에서 말이죠. 휴게소에서 좀 울다가 후배에게 전화했습니다. '야,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잘 다녀왔다고 이 말만 해주라'. 그랬더니 그 친구가 '잘 다녀왔다'고 말해줬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조금 진정이 됐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위로가 필요한 딱 한 명 필요하면 제가 해주겠습니다. 잘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잘하고 있다가 아니라 이 사회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꼭 잘하고 있다,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멋진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깨 펴고 살아도 됩니다. 열심히 응원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예전에 제가 빌라에 살았는데요. 그 빌라 반장 어머니는 제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듯합니다. 이사한 지 삼일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저를 찾아와서는 '김제동 씨죠? 연예인이시죠? 우린 그런 거 잘 몰라요'.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런데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거였죠. 그렇게 말하면서 음식물 쓰레기 잘 버리고, 차 주차 잘하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방송에서는 '그런' 이야기 안 하고 다녔으면 좋겠다고 덧붙이더군요. 

저도 지지 않고 음식물은 아직 버릴 때 안 됐고, 차는 잘 주차했다고 하자 앞으로 그렇게 해달라는 거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 말이 왜 그렇게 상처가 되던지... 사람은 큰 게 아니라 그런 거로 죽는다고 생각했죠.  

탁자에 무릎을 부딪쳤을 때, 엄청 아픕니다. 그렇다고 병원에 가기도 그렇습니다. 대신 그것을 본 옆에 사람이 '어, 그거 정말 아프겠다' 이러면 좀 낫습니다. 그런데 제일 서운할 때가, '칠칠맞게 왜 그러냐' 이러면 그게 상처로 남습니다.

어쨌든 너무 분한데, 싸우기도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10년 동안 함께 일한 코디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래서 한참을 하소연했습니다. 그날 겪은 일을 풀어놓았습니다. 그 친구는 묵묵히 듣고만 있더군요. 그러더니 갑자기 '그 아줌마가 미쳤나, 돌았나...' 이러면서 자기 혼자 분에 받쳐서 화를 막 내더라고요. 그 말을 전화기 너머로 듣는데 이미 나의 화는 반은 내려가더라고요. 누군가 나보다 더 화를 낼 때 그렇잖아요? 그 이후에는 제가 그 친구를 말렸죠. 그 친구가 '몇 호예요?' 이러면서 당장이라도 뛰어올 듯이 말하길래 '알면 어떻게 하게?' 묻자 '가서 X 싸게요'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황당한 이야기지만 그 말을 듣는데 웃음이 났습니다. 이후 그 아줌마를 봐도 웃게 됐죠. 그 아줌마 집을 보면 X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그렇게 지금 MBC 사장실에 X를 싸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MBC) 사장은 뭐하려고 계속 버티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에게 내려오라고 하는 게 아니라 올라오라고 해야 합니다. 지 혼자 쳐 박혀 있지 않습니까. 우리와 같이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혼자 처박혀 있으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 김제동 씨. ⓒ프레시안(허환주)


"국정원이 노무현 추모제 사회 맡지 말라고 했다"

요즘 제게 블랙리스트 관련해서 (인터뷰) 요청이 많이 옵니다. 관련해서 모두 거절하고 있는데요. 저는 사실 그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들은 실패했고 지금도 실패하고 있는 중이라고. 그리고 우리는 성공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제는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게 됐네요. 지난 9년 동안 시민으로서는 불행한 시기였지만 코미디언으로서는 행복한 시기를 살았습니다. 

어떤 기자는 내게 '왜 자꾸 무대 밑으로 들어가냐'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기자에게 '거기가 무대다'라고 말합니다. 왜 자꾸 코미디언이 정치 이야기하느냐고 묻는데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정치인에게 가서 코미디 좀 그만하라고 해라'. 저는 그간 대통령을 걱정했습니다. '총 개머리판에 눈을 가져다 대고 총을 쏘면 반동으로 눈이 멀 수도 있다, 강바닥에 20조를 쏟아 부으면 안 된다, (로봇)물고기가 물에서 죽는 것은 이상하다'. 누군가 그런 말을 해야 하지 않나요? 그리고 안보를 강조한다고 하면서 군대는 가지 않는 게 코미디 아닌가요? 그런 것을 지적하는 것 자체가 코메디였습니다. (무대 아래에 있었던 것은) 코미디언으로서의 입장에 충실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웃기는 건 웃기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렇게까지 웃길 수가 있나 싶긴 합니다. 

사실 이제껏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는데, 이제 사실이 확인됐으니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MB 정권 때) 국정원 직원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국정원 직원 겁내지 마세요. 별로 능력이 없습니다. 저를 만나는 '보고 문자'를 상사에게 보내야 하는데 잘못해서 제게 보낸 적도 있습니다. '18시 30분, 서래마을 김제동 만남'. 그렇게 해서 간첩을 잡을까 싶더군요. 그런 게 국가안보위기를 초래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에게 국가안보를 맡겨도 되나 회의가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국정원 직원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문자 잘못 보냈다고. 저는 국정원에 협조한 사람입니다.(웃음) 

그렇게 국정원 직원을 당시 만났습니다.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들의 고유 업무 아닌가요? 한 번은 동네 술집에서 국정원 직원을 만났습니다. 그가 말하길 '노무현 서거 노제 사회를 맡았으니 1주기 추모제 사회는 안 맡아도 되지 않나. 제동 씨도 방송해야 하지 않나' 이러더군요. 그러면서 자기가 VIP에게 직보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VIP가 제 걱정을 많이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가서 전하라고 했습니다. 지금 대통령은 임기가 4년 남았다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전세라고. 그리고 당사자에게 말했습니다. 추모제에 가지 말라고 한 것은 나를 협박한 것이라고. 만약 당신 말을 듣고 안 가면 진짜 협박한 게 되기에 당신을 위해서라도 가야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안 가면 진짜 협박이 되는 거였죠. 

그때는 촌놈 시절이었습니다. 겁도 없었죠. VIP에게 직보한다는 것도 안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국정원 문건 보니 진짜였더군요. 

그와 헤어지고 집에 들어가는 순간 무릎이 풀리더군요. 다음 날 아침에는 공황장애까지 왔습니다. '그 말은 하지 말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죠. 하지만 이후 북콘서트 등을 하면서 잘 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 

"손석희, 명예훼손으로 걸려면 걸어라"

이날 김제동 씨는 자신을 'MB 블랙리스트'로 이끈 인물은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이라고 폭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100분 토론> 출연 당시, 손석희 사장과의 '썰'을 유쾌하게 풀어놓았다. 앞서 손 사장은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을 통해 "이명박 정부 때 잘나가던 예능 프로에서 하루아침에 하차했고, 이후에도 방송출연 관련, 부침을 거듭했다"며 "사실 김제동 씨의 소셜테이너의 자리매김은 제가 직접 섭외했던 100분 토론이 시작이었다고 본인은 주장한다"고 말했다.  

김제동 씨는 "손석희 사장은 제 인생에 책임 있는 사람"이라며 "여러분은 저 사람을 존경할지 몰라도 나는 일도 없다. 나는 저 사람이 싫다"고 말해 좌중을 폭소케 했다. 

"당시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는데, '김제동씨? 손석희라고 하는데요'. 이러더라. 그때만 해도 내가 존경할 때다.(웃음) 그러면서 <100분 토론> 400회 특집을 하는데 여론조사에서 가장 잘 토론을 잘할 것 같은 연예인 1위로 제동 씨가 뽑혔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담없이 나오면 된다고 했다.

얼마나 영광인가. 400회 특집이고 주제도 '토론'이라고 했다. 좋았다. 그 뒤 대본이 왔다. 그런데 주제가 '이명박 정권 1년 평가'였다. 그런데 어쩌겠나. 생방송인데 안 나갈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나갔더니 제 자리가 정해져 있었다. 그런데 제 옆에는 해철이 형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옆이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 민주당 의원 순이었다. 나는 곧바로 '그쪽'이 되었다. 나는 한 마디도 안 했는데 그렇게 되어버렸다. '그쪽‘ 맞은편에는 전원책. 나경원 등이 앉아 있었다. 내 인생은 그렇게 됐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 노제 사회를 맡을지 고민할 때도. 손석희 씨에게 전화로 물어봤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그랬더니 본인이 견뎌낼 몫이라면서 자기가 다른 일이 있어서 끊어야 한다고 하면서 끊어버렸다. 이쯤되면 나는 그를 싫어할 자유가 있지 않나. 체형도 마음에 안 든다. 구부정하지 않나. 명예훼손으로 걸라면 걸어라.(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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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기자 kakiru@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