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무시한 CCTV는 흉기다
현실을 무시한 CCTV는 흉기다
[기고] 수십억 예산 투입된 운전실 CCTV, 철도 안전 보장할까
세계 2차 대전의 결정적 장면 중 하나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다. D데이에 노르망디 해안에 상륙하는 연합군의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독일군의 전력을 분산 시킬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독일군의 광범위한 배우에 공수부대를 투입하는 작전이 시도됐다. 당시 공수부대는 수송기에서 낙하하는 강하병과 글라이더를 타고 넓은 마당에 착륙해 작전을 벌이는 글라이더 병 등 두 종류가 있었다. 자체 동력이 없는 글라이더는 수송기에 나일론 줄로 연결되어 견인되었다. 작전지역에서 수송기가 견인줄을 끊으면 활공을 하다가 조종사가 적당한 지점에 착륙시켰다. 

글라이더는 철제 구조물에 캔버스 천을 덧대 무게를 줄임으로서 공중에서의 안정적 활공을 가능하게 했다. 반면 이 같은 구조는 적의 대공포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졌다. 상륙작전이 전개되기 전 미 101공정사단은 사단장과 부사단장을 포함한 부대원 전원이 노르망디 지역에 투하되었다. 부사단장 돈 프랫 준장은 자신의 지휘 차량인 지프와 함께 글라이더에 올랐다. 

장군을 보호하려는 명목으로 글라이더에는 대공포 방어용 철판장갑도 장착되었다. 장군의 운명은 비극으로 끝났다. 장갑은 글라이더의 활공능력을 갉아먹었고 착륙이라기보다는 추락에 가까운 착지 끝에 실려 있던 지프가 장군을 덮쳤다. 현실적 조건을 무시한 안전장치가 흉기가 된 셈이다. 

이 같은 일들이 지금 철도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 디젤기관차 운전석 위에 설치된 CCTV. ⓒ박흥수


전국의 모든 기관차 운전실에 CCTV가 설치되고 있다. CCTV는 전방 촬영용과 기관사 감시용 두 개가 설치된다. 기관사 머리 바로 위에 설치된 CCTV는 기관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게 된다. 철도 안전법의 개정에 따라 이루어진 조치이다. 수십억의 예산이 투입된 운전실 CCTV는 철도 안전을 보장하게 될까? 

2014년 국정감사에서 많은 의원들이 철도 안전을 이야기 하면서 블랙박스(영상기록장치) 설치를 주문했다. 당시 최연혜 철도 공사 사장은 철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블랙박스 설치를 약속했다. 사장이 철도의 특성과 현장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의원들의 호통에 화답했다. 

CCTV는 사고를 예방하는 장치가 아니다. 사고 당시 영상을 기록하는 것으로 사고 상황을 재현하는 것이다. 그것도 기껏해야 기관사가 어떤 손동작을 했는지 정도이다. 현재 기관차에는 단순 영상 기록장치가 아닌 항공기에 장착되는 진짜 블랙박스와 유사한 기록장치가 장착되어 있다. 이 장치에는 속도, 신호체계, 브레이크 작동 시점, 비상 브레이크 동작 상황 등 사고 분석에 유용한 자료들이 자동으로 저장된다. 

신형 전기기관차나 ITX 전동차에는 CCU라는 컴퓨터가 장착되어 있어 기관사가 조치한 모든 내용이 자동 저장되게 되어있다. 사장이라면 이런 면을 들어 단순 영상기록장치를 뛰어 넘는 기록 장치들이 있음을 의원들에 설득하고 철도 안전을 예방하는 보다 고차원적인 방안을 도출하도록 유도하는 게 정상이다. 

철도는 대중교통 수단 중 가장 안전한 교통수단이다. 또한 한국 철도는 국제철도연맹의 기준으로도 선진국과 대등한 안전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철도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고는 인력부족이나 외주화 등 지난 정권 내내 가속화 되어온 구조조정과 수익위주 경영이 빚어낸 결과이다. 

철도안전을 위해서 정책당국과 철도공사가 집중해야 할 곳은 다른 데 있다. 선진국들은 철도사고에 대한 접근을 '처벌위주에서 원인분석'으로 전환하고 있다. 시스템과 인간의 조화를 통해 완성되는 철도 안전체계에서 시스템 오류와 휴먼에러를 줄이는 방향은 상호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단순히 사고 상황에서 기관사가 어떤 손동작을 했는지 밝히는 것은 향후 사고 책임의 전가 대상을 명확히 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시스템이 인간의 오류를 예방하고 인간이 시스템의 오류를 바로잡아야 하는 크로스 체킹 안전 시스템이 철도이다. 설사 인간의 실수가 빚어지더라도 시스템이 방어해주지 않으면 철도 안전은 확보되지 않는다. 국토부와 철도공사의 발표나 수많은 언론 기사에 블랙박스(영상기록장치)가 철도사고를 예방할 것이라고 주장하나 단언컨데 영상기록장치는 철도사고 예방용이 아니다. 

만약 모든 노동자의 머리위에 감시카메라가 달려 있다면 이 사회는 불안장애로 넘쳐날 것이다. 수 천 명의 생명을 책임지는 기관차 운전실이라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느냐고 지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기관차 운전시스템은 규정 속도 시속 5킬로미터만 초과해도 자동제어 시스템이 제동을 걸고 10킬로미터를 넘으면 비상 정차 한다. 기관사가 졸아서 반응장치에 응답하지 않아도 바로 정차하게 된다. 다중화 된 안전시스템이 부재한 후진국형 감시카메라 설치가 한국철도의 안전을 위한 중요한 전기처럼 여기는 정책당국의 현실은 암담하다. 

전국의 기관사들은 자동차에 설치된 것처럼 전방 촬영용 카메라로도 충분한 영상기록장치를 왜 기관사 머리위에 달아 놓아야 하는지? 인권의 측면에서 그리고 철도 안전의 측면에서 묻고 있다. 

기관사들에게 심신의 평안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이다. 기관사가 출근 했을 때 감정적으로 안 좋은 일이 있다면 승무에서 배제하는 것이 타당할 정도로 기관사의 정신적 건강은 중요하다. 기관사 머리 바로 위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는 기관사들의 심리 상태를 일상적인 불안과 긴장 한 가운데로 몰아넣을 것이다. 이런 심리상태의 기관사들이 운전하는 열차에 탄 승객들은 안전할 것인가? 

필자는 20년이 넘도록 철도 현장에서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피부로 경험해왔다. 철도 안전을 위해 필요한 일의 하나는 현장의 의견을 듣는 것이다. 수 십 년간 현장에서 땀 흘린 사람들이 전문가다. 그러나 철도 안전관련 법이나 조치들이 시행될 때 현장의 의견이 반영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명문대를 나오고 고시를 통과해 일찍부터 부처의 신망을 받는 인재라 해도 하루아침에 철도정책이나 안전을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찌됐건 철도관련 부서에 발령 받으면 이런 사람들이 안전 정책을 총괄하고 지휘해야 한다. 이런 관료체제의 맹점을 극복하는 길은 산하기관의 전문가들인 노동자들과 머리를 맞대는 것이다. 상명하달 식 일방주의의 폐해는 글라이더에 철판을 덧대는 것처럼 목표했던 것을 이루지 못하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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